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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욥기묵상

하나님, 그분만으로 만족하십니까?

2014.5.2. 욥기묵상(욥1:6~12)
하나님, 그분만으로 만족하십니까?




어제
세월호 참변을 겪고 있는 단원고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눈물의 항구가 된 팽목항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는 장면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정부의 초기대응과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항의하는 글들이 대다수인 피켓 사이로
이런 글이 보였습니다.

"첫째도 구조, 둘째도 구조, 셋째도 구조"

아마도 이 피켓의 글이
지금 세월호의 비극 앞에 선 한국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어졌습니다.
아니,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우리들의 영적 단면이기도 합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같은 나이의 자식을 가진 부모로써의
동병상련의 마음은 있을지 모르나
저 바다에서 허망하게,
그것도 자신의 눈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없는,
그야말로 속절없이 자식이 시신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기다려야 했던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부모된 심정으로 기도하면서
내 마음을 더 아리게 만드는 것이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는"보상논리"입니다.

학부모들의 시위는 이익적 논리가 아닙니다.
그들의 외침은 협상이 아닙니다.
단지 아픔의 문제고, 사랑의 문제인데요.
사회는 그 문제를 보상의 논리로 풀려고 합니다.

아픔은 같이 아파하며 푸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학부모들에게는 다른 것이 필요없습니다.
오직 자식 이외...

아픔을 당한 이들이 바라는 것은
보상을 해주는 정부가 아니라
같이 아파하는 정부이고,
정부를 걱정하는 정부가 아니라,
자신들의 자식을 걱정하는 정부를 바랄 뿐입니다.

이 땅에 신앙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누군가를 믿고 살아갑니다.
문제는 '신앙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그 '신앙이 어떤 것인가?'입니다.

오늘 사탄은 하나님께 이같이 말합니다.
"욥이,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사탄이 하나님과 멀어지도록 우리에게 심어놓은 신앙은
[비신앙]이 아니라 [보상 있는 신앙]입니다.
무언가를 바라고 주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듯이
무언가를 바라고 주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무언가 보상을 위해 섬기는 신앙도 신앙이 아닙니다.

욥기의 시대적 배경은 창세기와 같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앙을 구별해 놓으셨습니다.
대가를 바라는 섬김과 죽기까지 드린 섬김.
조건적인 사랑과 무조건적인 사랑.
보상을 바라는 신앙과 아무 이유없는 신앙.

사람이 사람되기 위해서는
생명을 돈으로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정부되기 위해서는
국민보다 정권을 더 위에 놓아서는 안 됩니다.
신앙이 신앙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보상의 논리가 지배하지 않는 신앙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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