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묵상17] "하나님의 진리는, 나의 성취와 무관한 것입니다."(신5:7)

2012. 7. 31. 22:55묵상하는말씀/신명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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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토라]라고 합니다. [토라]는 큰 의미에서는 가르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시편 1:2절에 보면 “복 있는 자는... 오로지 주님의 [토라]를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토라]를 묵상하는 사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오경을 주로 [토라]라고 부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가르침이 [토라]이고, 율법인 셈이죠. 전통적 계산에 의하면 구약 성경 안의 [토라]에는 613개의 계명이 있다고 합니다. 그중 [~ 하라]는 긍정적인 계명은 214개 항목이고, [~하지 말라]로 되어 있는 부정적인 계명은 365개라고 합니다. 우연하게도 214라는 숫자는 인간의 뼈마디 수와 동일하고, 365는 1년의 날수와 일치하여, 어떤 이들은 이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몸은 성전이어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인격이며,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은,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로 말입니다.

 

간혹 우리는 율법하면 십계명만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십계명은, 많은 [토라]의 한 부분입니다. 아마도 그런 착각은 십계명이라는 용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십계명은 히브리어로 [10마디 말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계명이라고 명명하고, 이 계명을 아주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십계명이 바로 모든 토라를 10가지로 축약한 율법의 축약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613개의 토라를 10개로 추리셔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를 위대한 성서학자 중 하나인 움베르토 카수토는, “사람이 열 손가락으로 꼽으면서 언제나 기억하고 지키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 적이 있는데, 상당히 의미 있는 해석이라 생각됩니다.

 

십계명은 구약성경에 두 번 나옵니다. 처음은 출애굽기 20장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시나이반도 남부, 시내산이라고 알려진 곳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는 말씀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광야 시대의 마지막, 모세가 설교하는 장면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바로 신명기의 십계명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광야의 시작과 마지막에서 십계명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시간적으로는 40년 가까이의 차이가 있습니다.

 

모세는 광야의 마지막, 인생의 막바지에 닿아, 그것도 꿈에 그리던 가나안이 보이는 곳에서, 자신의 마지막 설교를 하면서, 다시 십계명을 이스라엘민족에게 선포합니다. 저는 십계명이라는 말씀보다 오늘은 그 말씀을 선포하는 모세의 심정에 초점을 맞춰볼까 합니다. 모세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한다.” 이 말씀을 선포하는 모세의 처지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광야 이후 광야 1세대를 이끌면서 그들은 편히 쉴 집 하나, 맘껏 배불릴 땅 한 평 없이 40년을 살았습니다. 수없는 질책과 질타, 오해와 쑥덕거림, 순종은 고사하고, 끌어내리려 안달하는 수많은 사람들 틈 속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얼마나 괴로웠을지를...

 

모르긴 몰라도, 모세는 타인과 싸우기 이전에, 자신의 확신과 싸워야 했고, 하나님과 처절한 순종과 불순종의 게임을 해야 했으며, 사명자의 본분과 자연인으로의 자유가 부딪치는 현장에서 늘 선택해야 했습니다. 내면의 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깝게는 가족에서부터, 자신을 믿고 따르던 지도자들, 멀리는 타민족에 이르기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모세를 괴롭히는 사건은 계속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그 고생을 다 하고도, 먼발치 가나안 땅을 내려다보면서도, 모세는 끝끝내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초라한 패배자처럼 물러나야 하는 현장에 놓여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설교는 모든 것을 이루고, 박수받으며 떠나는,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그의 마지막 설교는, 모든 사람들이 은퇴식이라는 이름으로 초청되어 존경을 표하고, 사역 40년, 목회 40년과 같은 현수막이 내걸리며, 모든 방송이 너 나할 것 없이 취재에 열을 올리는 그런 화려한 자리가 아닙니다. 그의 마지막 설교는 미완성이고, 회한과 아쉬움이 묻어나는 그런 자리입니다. 어떤 이는 모세를 실패자라고 낙인찍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 어떤 이는 자신의 미래를 이미 다른 곳에서 찾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지금 설교 자리는 그런 자리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연출과 기획이 버무려진 인생이 모세의 인생입니다. 이왕 시작 하셨으면 모세로 끝을 보아야 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이 스토리를 마무리하지 않고 죽는 영화는 없는데, 하나님은 다른 영화 연출과는 전혀 다른 기법을 사용하셨습니다. 모세만 억울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만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만 버려진 것처럼 되었습니다.

 

“하나님 이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힘차게 외쳤던 40년 전의 패기찬 목소리와는 달리 이후 그에게 주어진 40년은 참 지루하고, 참 보잘것없으며, 참 참담했습니다. 결코 멋지지 않았습니다. 결코 그 패기의 목소리를 증명할만한 놀라운 결과가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40년은 결코 하나님 이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외친 그의 확신에 걸맞은 시간들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그에게, “역시 하나님 이외 다른 신은 없어!”라고 할 만한 일들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40년의 세월을 지나, 이제 자신이 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도대체 이룬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이 늙고 초라한 노인에 입에서 나오는 선포가 놀랍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이외에는 다른 신은 없다...”

 

인생을 바쳐서 주님의 일을 하겠다는 확신에 찬 결심을 하고, 자신의 밥벌이를 다 버리고, 남을 위한 인생을 살겠다고 뛰어들었던 한 목회자의 인생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소명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뭔가 할 것 같던 자신감은 점점 사라져가며, 과감하게 나를 따르라고 소리쳤던 외침이 무색할 만큼, 현재는 초라한 현실에 사로잡혀, 어느덧 세월은 흘러 마지막 설교의 자리에 선 그때, 과연 그 목회자는 어떤 설교를 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자신은,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큰일을 하실 줄 알았겠지요. 적어도 수 천 명의 교인과 수 만 명의 헌신자를 일구어낼 위대한 사역을 할 수 있을 줄 알았겠지요. 그러나 목숨을 내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난과 돌팔매뿐이고, 남을 위해 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시와 멸시뿐인 그 자리에서 어떤 설교를 할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모세는 여기에 있습니다. 40년 전, 자신의 열정과 패기가 살아 있을 때와, 그것이 아련한 추억이 되고,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한 지금에도, 똑같은 선포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하나님의 진리는, 나의 성취와 무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나의 캐리어와 무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나의 영광과 무관한 것입니다. 내게 열정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내게 힘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내게 자신이 있을 때와 없을 때, 그때에도 하나님은 동일하십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은 진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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