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27. 11:33ㆍ묵상하는말씀/신명기묵상
우상이라는 말을 나타내는 히브리어는 아주 많습니다. 우상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만도 15종이 넘습니다. 그중에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은 [엘릴 EL-EEL]이라는 단어로, ‘쓸모없는’, ‘쓸데없는’, ‘존재하지 않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상이란 신기루와 같은 것입니다. 존재가 없는 것이죠. 십계명에 나오는 우상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페셀 PEH-SEL]입니다. [파살]이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인데, 파살은 나무나 돌을 깎아서 만드는 행동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페셀은 새긴 우상이 됩니다. 헬라어로는 사도행전7:41에 나오는 [에이돌론 I-DO-LON]이 대표적인 단어로, 이것이 라틴어 [이돌라 IDOLA]가 되었고, 영어로 IDOL이 되었습니다. 지금 젊은 연예인들을 보고 아이돌이라고 부르는 그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이라는 문제를 매우 엄중히 다루고 계신 이유는, 그 문제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근간을 흔드는 근본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영적믿음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그 하나입니다. 영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방향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향해야 할 과녁은 하나입니다. 그것을 비껴가는 모든 것은 죄입니다.
죄라고 번역하는 [하마르티아]는 과녁을 빗나가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양궁선수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 과녁은 결코 작지도 않을 뿐 아니라 우리가 그 과녁을 향해서 쏘기만 한다면, 우리의 화살은 그 과녁에 정확히 맞게 될 것입니다. 마치 움직이는 과녁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녁에 빗겨 나는 것은 과녁이 작아서도, 과녁이 숨어있어서도, 또한 우리의 양궁 실력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과녁이 아닌, 신기루와 같은 거짓 과녁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향한 과녁이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과녁을 향하는 것, 그것이 우상의 문제입니다.
옛 사람들은 우상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을마다 집안마다 우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우상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사회가 현대화되면서 깎아 만든 우상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세상의 흐름은 결코 좋은 쪽으로 흐르는 법이 없습니다. 우상 또한 많아지면 많아졌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적 우상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대답을 한 학생들의 2/3 가까이가 연예인 혹은 스포츠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번다는 이유였습니다.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가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의 인기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명해지면 행복할 줄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벌면 성공한 삶이 되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사람 가운데 성공하는 스타는 몇 사람 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성공이 결단코 인생의 성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오늘날 이렇게 깎아 만든 영적 우상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좋아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좋아 보이는 습성은 태초에도 있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는 순간 보암직스럽고, 먹음직스러우며, 탐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나의 것이 아닌 것을 탐하는 것이 우상이고, 보이는 것을 쫓는 것이 우상입니다. 오늘날에도 보여달라는 요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보이는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보이지 않는 이수일의 마음보다 더 효과적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믿음에 있어서도 보이는 우상이 지배를 합니다. 금가루가 떨어지는 것을 보아야 믿고, 자신이 꿈꾸는 축복이 현실이 되어야 믿는 시대입니다. 어떻게 하면 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보일까 가 교회의 이슈가 되었고, 사람들의 초점이 되었습니다.
본래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귀중한 법입니다. 내 안의 사랑은 결코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말로도 그 사랑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내 보이는 눈물이 그 사랑을 다 말할 수 없고, 내 보이는 행동이 그 사랑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만입이 내게 있어도 그 입으로 주님의 사랑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을 쫓는 우상에 빠지면,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하게 됩니다. 보이는 것에 가치를 두면,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외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셨습니다. 우리의 보이지 않는 영, 우리의 보이지 않는 미래, 우리의 보이지 않는 잠재력에 더 큰 가치를 두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보이는 것에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치에 반응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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