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98 - 옳은 말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따뜻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2026. 5. 22.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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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22~35   그래서 사도들과 장로들과 온 교회가 대표들을 뽑아서,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대표로 뽑힌 사람은 신도들 가운데서 지도자인 바사바라고 하는 유다와 실라였다. 그들은 이 사람들 편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써 보냈다. "형제들인 우리 사도들과 장로들은 안디옥과 시리아와 길리기아의 이방 사람 교우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사람이 [여러분에게로 가서], 우리가 시키지 않은 여러 가지 말로 여러분을 혼란에 빠뜨리고, 여러분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몇 사람을 뽑아서,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하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또 우리가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이 이 일을 직접 말로 전할 것입니다. 성령과 우리는 꼭 필요한 다음 몇 가지 밖에는 더 이상 아무 무거운 짐도 여러분에게 지우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우상에게 바친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삼가면, 여러분은 잘 행한다고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들은 전송을 받고 안디옥에 내려가서, 회중을 다 모아 놓고, 그 편지를 전하여 주었다. 회중은 편지를 읽고, 그 권면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유다와 실라도 예언자이므로, 여러 말로 신도들을 격려하고, 굳세게 하여 주었다. 그들은 거기서 얼마 동안 지낸 뒤에, 신도들에게서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받고서, 자기들을 보낸 사람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 머물러 있으면서, 다른 여러 사람과 함께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금요일 아침입니다. 한 주간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 맡겨진 자리에서 애쓰고, 사람을 만나고, 해야 할 일을 감당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연휴가 시작됩니다. 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좋겠습니다. 쉼은 멈추는 시간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시간입니다. 몸도 마음도 숨을 고르고, 좋은 사람들과 웃음을 나누며, 주님 안에서 깊이 회복되는 복된 쉼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옳은 말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내가 맞는 말을 했는지, 틀린 말을 했는지에 집중하죠. 그래서 누군가 내 말에 상처를 받았다고 하면 억울해합니다. "내가 틀린 말 했어?"라고 반문하죠.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 때문에 누군가는 마음을 닫습니다. 누군가는 관계에서 물러납니다. 누군가는 다시 말할 용기를 잃습니다. 신앙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묻습니다.

"그 말이 사람을 살렸는가?"
"그 말이 상대의 마음을 헤아렸는가?"

옳은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옳은 말이 사람을 살리는 방식으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은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한 결정을 전합니다. 이방인 신자들이 유대인의 율법을 그대로 지켜야 하는가를 두고 큰 논쟁이 있었죠. 이것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복음의 방향을 정하는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마침내 결론을 내립니다. 이방인들에게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기로 한 것이죠. 복음은 유대인의 문화 안에 갇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더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올바른 결론을 내리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 결론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까지 깊이 고민했죠. 그래서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유다와 실라를 함께 보냅니다. 말만 보낸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냈습니다. 문장만 보낸 것이 아니라 얼굴을 보냈습니다. 결정만 보낸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보냈습니다.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좋은 결정은 내용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좋은 결정은 그 결정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들릴지까지 살피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죠. 누군가가 버려졌다고 느끼지 않도록 살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혼자 판단받는다고 느끼지 않도록 곁에 서 주는 거예요.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신자들이 많은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불안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는가."
"예루살렘 교회는 우리를 어떻게 보는가."

이런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결정문만 보낸다면 아마도 차갑게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설명하고 위로하게 했습니다. 얼굴을 마주하고 마음을 전하게 했죠.

우리도 옳은 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옳은 말을 합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옳은 말을 합니다. 친구에게 충고할 때도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신앙의 이름으로 바른 말을 할 때가 있죠. 그렇게 우리는 옳음을 주장하는 데는 익숙합니다. 그러나 그 옳음이 상대에게 어떻게 닿는지는 자주 놓칩니다. 틀린 말은 하지 않았는데 관계가 멀어집니다. 맞는 말을 했는데 상대의 마음은 닫힙니다. 진실을 말했는데 사람은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나는 정말 진리를 전한 것입니까? 아니면 내 옳음을 증명한 것입니까."
"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말한 것입니까? 아니면 이기기 위해 말한 것입니까."

같은 말도 어떤 온도로 전하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칼이 되기도 합니다. 같은 진실도 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일으키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같은 충고도 어느 때에 말하느냐에 따라 위로가 되기도 하고 공격이 되기도 합니다. 말의 내용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말의 온도는 더 중요합니다. 말의 방식도, 타이밍도, 그리고 상대를 향한 배려도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진리는 늘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때로는 강하게 꾸짖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꾸짖음에는 따스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차가운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상처 입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따뜻한 복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죄인은 주님 앞에서 무너졌지만 동시에 다시 일어났습니다. 병든 사람은 자신의 아픔을 들켰지만 동시에 치유를 받았습니다. 길 잃은 사람은 책망을 들었지만 동시에 집으로 돌아갈 길을 얻었습니다.

진리는 사랑의 몸을 입어야 합니다. 옳은 말은 따뜻한 마음을 통과해야 합니다. 복음은 정답을 던지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는 방식으로 진리를 건네는 일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편지와 함께 사람을 보냈듯이, 우리도 말과 함께 마음을 보내야 합니다. 진리와 함께 얼굴을 보내야 합니다. 결정과 함께 배려를 보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을 살리는 복음의 방식입니다.

오늘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요? 내 말이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말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말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말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을 세우기 위해 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말이 차가운 선언이 아니라 따뜻한 돌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옳은 말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따뜻하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말과 마음을 통해 누군가가 위로받고 다시 일어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eoLrnotj0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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