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129 -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2026. 2. 22. 13:02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반응형

사도행전 10:41 그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여 주신 증인인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와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거룩하고 복된 주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사랑하는 공동체 가족들을 만나,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복 주시기 원하시는 주님을 예배함이 기쁨됩니다. 예배 가운데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안과 회복을 누리시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종종 "왜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안 받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을까?"라는 의문을 품곤 합니다. 이 질문에 우리는 제사의 방식이나 제물의 종류에서 문제점을 찾으려 할 때가 많죠. 때론 편애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들먹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풀기 위한 핵심 열쇠는 그것이 아니라 지금 그들이 서 있는 '공간'에 있습니다. 타락 이후, 인간은 에덴동산을 떠나, 소위 '세상'이라는 곳에 던져졌습니다. 그 세상은 땀 흘려 수고해도 부드러운 밀알보다, 날카로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어놓는 곳입니다. 세상은 결코 내가 원하는 대로, 뿌린 대로 정직하게 열매를 돌려주는 만만한 곳이 아니죠.
성경의 시작부분에 기록된 이 가인의 죄에서 우리가 들어야할 영적인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은 결코 우리의 마음대로, 우리의 뜻대로, 심지어 우리 안에 있는 정의가 흐르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쓰며 수고를 다해도 그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뒤틀려진 세상이라는 점을 알려주시는 거죠. 우리 삶도 이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정직하게 땀 흘렸는데 결과가 처참할 때, 선의를 베풀었는데 배신으로 돌아올 때 우리는 억울함과 분노를 느낍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불합리하다고 그 세상을 탓한들 우리의 인생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내가 태어난 자리, 내가 속한 생명을 아무리 탓한들 그것이 바뀌는 일은 없죠. 그런데 가인은 어떻습니까?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먼 동생 아벨에게 쏟아붓고 돌로 쳐 죽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살인이 아닙니다. 내 실패와 억울함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는 가장 악하고 비겁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 문제를 계기로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우리를 일깨우시듯, 동생 아벨의 죽음을 통해 가인에게 말씀하시죠.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신앙의 방식은, 세상을 탓하며 남에게 분노를 쏘아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속일지라도 우리는 묵묵히 내 안의 가치, 내 안의 소망, 내 안의 사랑과 기쁨, 감사를 부여잡고 지키며 걷는 것이라고 말이죠.
인생을 살다보면 부모들은 철없는 자식의 모진 말에 깊은 상처를 입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음날 자녀들에게 밥을 주고 부모로서 돌봄을 포기하는 법은 없어요. 상처를 받아도, 가슴이 찢어져도, 그러나 묵묵히 부모의 도리를 멈추지 않는 것이 부모의 삶입니다. 자식이 가시덤불로 찔러도 엄마는 슬픔과 노여움 때문에 엄마로서의 일상과 사명을 포기하는 법이 없죠.
아시다시피,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불합리한 일을 당하신 분입니다. 죄 없으신 분이 사람들의 배신과 조롱 속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당장 빌라도나 대제사장을 찾아가 복수하며 세상을 뒤집어엎으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결코 분노로 반응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주님은 자신을 배신하고 도망친 못난 제자들이 있는 갈릴리로 조용히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밤새 지친 그들을 위해 숯불을 피우고 생선을 구우며 일상의 식탁, 곧 '사랑의 밥상'을 차려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증언한 "우리는 그와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다"는 고백은, 세상의 어떤 악의와 배신도 주님의 사랑과 평안의 일상을 파괴할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위대한 승리의 선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세상의 불합리와 모순 속에서도 가인처럼 피 튀기는 복수나 분노로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구처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아무리 나를 억울하고 힘들게 만들어도, 마땅히 해야 할 영적인 일들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기도의 자리를 지키고, 감사의 언어를 지키며, 평안의 식탁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절망의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부활의 주님과 함께 영적인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는 것, 그것이 악한 세상을 향한 가장 위대한 복수이자 승리입니다.
728x90
반응형
'묵상하는말씀 > 사도행전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도행전묵상일기 134 - 사명은 삶입니다. (0) | 2026.02.27 |
|---|---|
| 사도행전묵상일기 133 -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0) | 2026.02.26 |
| 사도행전묵상일기 132 -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내 마음의 방향이 더 중요합니다. (0) | 2026.02.25 |
| 사도행전묵상일기 131 -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0) | 2026.02.24 |
| 사도행전묵상일기 130 - 뒤틀린 세상을 바로잡는 새로운 재판장이 오셨습니다. (0) | 2026.02.23 |
| 사도행전묵상일기 128 -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실패는 과정이 됩니다. (0) | 2026.02.20 |
| 사도행전묵상일기 127 - 말씀은 곧 평화입니다. (0) | 2026.02.19 |
| 사도행전묵상일기 126 - 나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겉모습이 아닌 '가면 너머'의 진실한 마음이기를 기도합니다. (0) | 2026.02.18 |
| 사도행전묵상일기 125 - 예배의 8할은 기대감입니다. (0) | 2026.02.17 |
| 사도행전묵상일기 124 - 영적 통찰력이란, 내게 닥친 현실의 사건을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하여 해석해 내는 능력입니다. (1) | 2026.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