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45 - 마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2025. 11. 13.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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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12~13   사도들의 손을 거쳐서 많은 표징과 놀라운 일이 백성 가운데서 일어났다. 그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서, 솔로몬 행각에 모이곤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누구 하나, 감히 그들의 모임에 끼여들지 못하였다. 그러나 백성은 그들을 칭찬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깊어가는 가을, 짙어지는 겨울의 정취가 움추림보다는 설레임이 되는 하루이길 빕니다. 오늘도 하는 일, 만나는 사람, 작은 생각 하나하나까지 성령의 감동이 흐르는 아름다운 시간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초대교회의 놀라운 역설을 보여줍니다. 한편에서는 사도들을 통해 놀라운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습니다. 걷지 못하던 이가 일어나고, 병든 자가 치유되었습니다. 또한, 믿는 사람들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였습니다. 이전에 묵상했듯이, 그들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는 것에 힘썼고, 그 결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합니다. 13절은 "다른 사람들은 누구 하나, 감히 그들의 모임에 끼여들지 못하였다. 그러나 백성은 그들을 칭찬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칭찬했다'는 것은 그들을 존경하고, 부러워하고, "참 멋지다"고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모임에 끼여들지 못하였다'는 것은 분명한 선을 그었다는 뜻이죠. 마치 따뜻한 불은 쬐고 싶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타버릴까 봐 적당히 거리를 두는 모습과 같습니다.

왜 그들은 이토록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칭찬하면서도, 그 일원이 되기를 주저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 너무 커 보였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외적인 비용', 즉 핍박의 두려움이었겠죠. 불과 얼마 전, 베드로와 요한은 산헤드린에 잡혀가 생명의 위협을 당했습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로마와 유대 종교 지도자 모두에게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히는 일이었죠. 그것은 사회적 고립, 재산의 몰수,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의미했습니다.

둘째는 '내적인 비용', 즉 거룩함의 두려움이었습니다. 바로 직전에, 교회 안에서 위선을 행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즉사하는 '거룩한 심판'이 있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큰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좋은 게 좋은" 사교 클럽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죄를 엄중히 다루시는 '거룩한 공동체'임을 의미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의 기적과 사랑은 부러워했지만, 그에 따르는 핍박의 '고난'과 거룩함의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칭찬은 하되, 소속은 거부한 것이죠.

우리는 이 비겁한 군중의 모습을 비웃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런 모습에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겉으로 보이는 핍박은 사라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여전히 '내부적 박해'라는 더 교묘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주저하는 이유입니다.

'손해 볼까 봐' 두렵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정직하게 세금을 내고, 이기심을 버리고, 남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할까 봐' 두렵습니다. 복음은 '내'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가 주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내 인생의 통제권을 넘겨주는 것이 두렵습니다. 복음은 세상의 쾌락이 아닌 거룩한 기쁨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면의 욕망을 이루지 못할까 봐 두렵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그들처럼, "예수님은 존경합니다. 하지만 제자로 살 자신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삶을 온전히 내어드리지 못하는 '칭찬만하는 구경꾼'으로 남습니다.

마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마음속의 존경과 동경만으로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칭찬'을 받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순종'과 '헌신'을 원하십니다. 기적은 '구경꾼'의 자리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적은 두려움을 넘어 거룩한 공동체 안으로 '뛰어든'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일어납니다.

오늘, 내가 '손해 볼까 봐' 망설이는 순종의 영역은 무엇입니까? 오늘, 내가 '내려놓기 싫어서' 거부하는 주님의 부르심은 무엇입니까? 두려움의 선 밖에서 그저 칭찬만 하는 구경꾼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주님의 생명 안으로 뛰어드는 결단이 있는 오늘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https://youtu.be/GO-Q-a9hw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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