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390 - 믿음은 현실을 인정하고 감사로 완성됩니다.

2025. 9. 9. 05:00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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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24:37~40   그들은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유령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그는 손과 발을 그들에게 보이셨다.


좋은 아침입니다. 상쾌한 가을바람이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기분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삶에도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은혜의 바람이 불어와 모든 근심을 씻어내고 기쁨으로 채우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놀라고 당황하는 제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떤 이들은 이게 사실일까? 의심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유령을 보는 것처럼 여겼다고 하죠. 우리말로 쉽게 말하면 귀신 보듯이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좀 이상하죠?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나셨다!"라고 외치며, 각자가 경험한 부활의 주님을 서로에게 간증하며 자랑하듯 고백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어떤 성경학자들은 제자들의 이전 고백이 진짜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우리는 믿음의 고백을 하면서도, 막상 그 일이 실제로 내 눈앞에 벌어지면 놀라고 당황합니다. 믿었지만, 그 믿음이 현실이 되는 순간에는 믿기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반응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습니까? 간절히 그렇게 되기를 믿고 기도했는데, 막상 정말로 그렇게 되면 어떤가요? 온몸에 전율이 흐르며 놀라지 않습니까? 꿈은 아닌지 제 살을 꼬집어 볼지도 모릅니다. 믿기지 않아서죠. 저는 제자들의 이 반응이 믿음 없음을 드러내는 부정적인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기도대로, 믿음대로, 기대대로 이루어진 기적 앞에서 우리가 보일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보다 주님의 응답은 언제나 훨씬 더 크고 놀랍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역사를 여는 작은 시작점일 뿐, 그분이 이루시는 일은 우리의 모든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그분의 손과 발에는 선명한 못 자국이 있었을 겁니다. 이것은 단순히 "내가 바로 십자가에 달렸다가 살아난 그 예수다"라고 증명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저는 이 말씀이 "이제 너희의 믿음대로 이루어진 이 놀라운 현실을 온전히 인정하고 감사하라"는 주님의 초대로 들립니다.

우리는 흔히 바라고 간구하고 소원하는 마음 그 자체를 믿음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 믿음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끌어내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의 시작일 뿐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완성은, 주님의 응답에 대해 마음을 활짝 열어 그것을 나의 현실로 인정하고, 감사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때로 그 응답은 우리의 기대와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과분할 수도 있어요. 어떤 모습이든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일하시고 응답하십니다. 그 일 하심과 응답이야말로 지금의 나에게 가장 어울리고 적절한 것임을 신뢰하고 인정하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그 응답 속에는 내 짧은 판단을 뛰어넘는 주님의 세밀하고 완벽한 계획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응답에, 펼쳐진 현실에, 허락하신 결과에 마음을 열고 온전히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감사하십시오. 우리의 믿음은 거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인정하고 감사할 때, 우리의 믿음의 분량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쑥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믿음의 고백은 더 구체적이고 깊이 있을 거예요. 좋은 대답은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죠? 우리 믿음의 고백이 깊어질 때 주님의 응답은 더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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