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384 - 죽으면 삽니다.

2025. 9. 2. 05:00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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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 24:19~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무슨 일입니까?"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일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였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그를 넘겨주어서, 사형선고를 받게 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분에게 소망을 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일이 있은 지 벌써 사흘이 되었는데, 우리 가운데서 몇몇 여자가 우리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예수가 살아 계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있던 몇 사람이 무덤으로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비로 시작한 9월인데 오늘 새벽에는 고요합니다. 결실의 계절, 우리의 삶 속에서도 주님과 동행하며 맺어온 믿음의 열매들을 하나하나 헤아려보는 감사와 기쁨의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대답은 참으로 일목요연합니다. 그들은 지난 며칠간 예루살렘에서 벌어졌던 일들, 즉 나사렛 예수가 어떤 분이었고, 어떻게 죽임을 당했으며, 여인들이 빈 무덤과 천사를 만났다는 소식까지, 마치 한 편의 보고서를 작성하듯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상황 파악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잘 하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그들의 말 속에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모순, 즉 어폐가 있습니다. 그들은 여인들의 증언과 제자들의 확인을 통해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사실과 천사들이 그의 부활을 알렸다는 소식까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부활하신 주님을 조금이라도 기대했다면, 예루살렘에 남아 그 다음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마땅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지금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그들이 원하고 바랐던 것이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예수님께 본래 바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바랐던 구원은 그런 영적인 구원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들은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정치적 메시아, 다윗과 같은 강력한 왕을 기다렸던 거죠. 그러니 힘없이 십자가에서 죽어버린 예수는 그들에게 더 이상 희망이 될 수 없었던 겁니다. 예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그의 부활 역시 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저 허탄한 소리에 불과했던 것이죠.

이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내가 죽지 않기 위해 싸우며 살아갑니다. 내가 더 잘났고, 내가 더 맞고, 내가 더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씁니다. 세상의 모든 분쟁과 다툼은 바로 이 ‘내가 옳다’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은 ‘내가 죽어야 산다’는 놀라운 역설의 진리를 가르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맞고 틀리는지를 따지기 시작하면 결국 다 같이 죽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죽고, 인격이 죽고, 관계가 죽고, 존엄이 죽어버립니다. 사랑하는 가정 안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치약을 중간부터 짜든 끝에서부터 짜든 그것이 무슨 대수입니까? 바로 그 순간, 내가 죽어야 모두가 삽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내가 죽어야 모두가 산다’는 것이 부활 신앙의 핵심이에요. 내가 죽어야 내 이웃이 살고, 내가 죽어야 우리 사회가 살아납니다.

잊지 마십시오. 세상을 이기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타인을 죽여서 내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음으로써 우리가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고 고백했습니다. 날마다 내가 죽어야, 날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날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새롭게 살아나는 놀라운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고, 그 부활의 주님을 깊이 만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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