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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한일서묵상일기

요한일서묵상일기 86 - 나의 길을 가겠습니다.

요한일서 5:21   자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은 우상을 멀리하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주님이 주신 시간을 아름답고 소중히 여기며 귀한 선물처럼 잘 지키고 간직하는 하루 만드시길 기도합니다.

 

드디어 요한일서 마지막 절을 묵상합니다. 지난 4월부터 시작해서 4개월 동안 아침마다 묵상의 끈을 이어준 말씀들이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묵상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흥으로 새롭게 저의 생각을 깨워준 말씀들을 대하게 되죠. 이번 요한일서도 제게는 큰 가르침과 새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한번 요한일서를 아침에 만날 기회가 오겠죠. 아마도 그때는 그때의 나름대로 제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이 새롭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렇게 묵상은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은 뭐라고 할까요? 마지막 말씀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듯합니다. 마치 영화의 마지막 씬이라고 한다면 열린 결말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후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장면이라고 할까요? 앞서의 말씀들과 긴밀한 연결보다는 따로 떨어져 새로운 시작의 글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그도 그럴 것이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내내 우상이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물론 전후의 맥락을 살펴볼 때 그가 강조한 초대교회 이단 세력에 대해 우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과의 결별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과 같은 마지막 메시지죠. 그러니까 사도 요한의 결론은 잘못된 것들과의 결별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늘 잘못된 것을 묵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이 어떤 것인지, 왜 잘못이 오는지, 왜 잘못에 그렇게 속는지 등의 묵상에 우리는 익숙합니다. 그리고 그 해결을 위해 잘못을 묵상하죠. 잘못의 정의를 내리고 잘못된 것들이 무엇인지 자세히 따지죠. 그런데 그런다고 잘못에서 해방되지 않습니다. 이미 저는 죄를 묵상하지 말자고 요청한 바 있죠. 죄를 묵상해서 죄에서 해방되지 않기 때문이죠. 어둠이 관영해도 어둠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오직 어둠이 아닌 빛을 묵상하는 것뿐입니다. 잘못된 길을 공부해서 탈출할 수 없어요. 오직 좋은 길을 찾는 것뿐이죠.

 

사도 요한도 우상에 대해 초점을 두고자 오늘 본문을 꺼낸 것이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단어는 따로 있기 때문이죠. 이를 위해서는 본문의 번역본을 조금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 번역본은 새번역이죠. 대체적으로 가장 번역이 잘 된 한글 성경본입니다. 그런데 부분적으로 함축된 표현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렇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개역개정성경본으로 다시 보죠.

 

요한일서 5: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죠? '자신을 지켜'라는 부분입니다. 새번역에는 그 부분이 빠져 있죠. 원문 헬라어에는 [퓔라쏘](φυλασσω)라는 단어가 있는데요. 그 단어의 뜻이 '지키다' '깨어 있다' '정신을 차리다'입니다. 새번역에는 이 단어를 '멀리하라'는 번역으로 녹여놓았죠. 그런데 저는 이 단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멀리하는 것보다 나를 지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멀리하는 것은 없어요. 내가 나를 지키면 죄에서는 자동적으로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온전한 길을 가면 유혹들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지킨다'는 말은 너무 중요한 말이 되는 거죠. 

 

오늘도 나쁜 일이 안 왔으면 좋겠죠? 그런다고 나쁜 일이 안 올까요? 중요한 것은 나를 지키는 일입니다. 내 머릿속에서 나쁜 일을 지우세요. 좋은 일을 생각하세요. 내 앞에 아름다운 것들만 바라보세요. 가끔 그런 분들 계시죠? 어떻게 아름답게만 세상을 보냐고요. 그렇죠. 문제도 보고, 잘못도 봐야죠. 그래서 지적도 해야 하고, 불합리를 고치기도 해야죠. 때론 싸우기도 하고 투쟁도 해야겠죠. 그렇게 아름답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야겠죠. 그런데 왜 세상은 여전히 똑같은 문제를 반복할까요? 정의롭게 투쟁하던 이들이 어느덧 똑같은 꼰대가 되고, 잘못을 지적하던 혈기는 왜 미움과 저주로 변할까요? 저는 제 안에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감정이 나빠지며 기쁨이 사라진다면 차라리 잘못에 눈을 감겠습니다. 다만 저는 이렇게 싸우겠습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보고 꼬집고 지적하기보다 그저 내 길을 가겠습니다. 그저 기쁘게 살겠습니다. 그저 복되게 살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복음을 가지고 남을 재단하고 평가하고 지적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의 기쁨을 표현하고 그 기쁨의 향기를 세상에 발하는 것뿐임을 선포하겠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임을 저는 믿습니다. 오로지 나를 지켜서 내 길을 가는 사람, 누가 뭐라고 해도 내 길을 가겠습니다. 이런 찬양 가사처럼 말이죠.

 

나는 계속 걸어갑니다.
수없이 넘어져도
사람들의 방향과는
조금 다르다 해도
내가 가는 길이
주가 가르쳐준 길이니
이곳은 바로
이곳은 바로
이곳은 바로 주님의 세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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