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 06:57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 1:12 우리의 자랑거리는 우리의 양심이 또한 증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세상에서 처신할 때에, 특히 여러분을 상대로 처신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행하고, 세상의 지혜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기분은 어떠신가요? 보통 우리는 외부의 충격에 나의 감정이 다치는 상태에 자주 빠집니다. 시끄러운 소리에 짜증 나고, 말을 안 들어서 화나고, 원하는 일이 되지 않아서 힘들죠. 이는 내가 아닌 남에게 나의 기분을 맡기면서 사는 것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조금만 상황을 뒤틀어도 한 사람의 감정쯤은 쉽게 흔들 수 있으니까요. 이건 좀 억울하죠? 자기 주도 학습이라는 것이 있더라고요. 학습자가 주체가 되어 학습 과정을 스스로 끌어나가는 학습활동을 의미한다고 하죠. 이 학습법은 주입식 교육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자율적이면서 창의적인 교육 학습법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분은 자기 주도적이지 않을 때가 많죠. 내가 주체적으로 나의 기분을 끌고 가지를 못합니다. 언제나 끌려가죠. 그러니 늘 불안할 수밖에 없죠. 언제 나의 감정과 기분을 해칠 일들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죠. 이 아침에 좋은 아침을 외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적어도 나의 기분은 내가 이끌고, 나의 감정 또한 내 안에서 세워가기 위한 최소한의 외침이죠. 그래도 외부의 공격에 버티기 힘든데 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니 지금 작은 목소리로 곁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하세요. '굿모닝!' '잘 잤어?' '안녕' 이렇게 말이죠. 듣는 이들의 기분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렇게 말하는 나의 기분은 밝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쓰게 된 이유를 이미 간단하게 설명 드렸죠? 12절이 되자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자신의 마음을 전합니다.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고린도 교회의 가족들을 대하고 있는지를 설명하죠. 그것을 바울은 딱 두 가지 단어로 정리했습니다. 바로 순박함과 진실함이죠. 이렇게 번역해 놓은 단어들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한국어로 번역하는 신학자들도 이런 단어들을 어떤 한국어로 번역할 것인가 매우 고심이 많았을 거예요. 뭐라 할까요? 단어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이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같은 단어여도 사람들의 경험과 학습의 차이에 따라서 해석하는 방법이 다를지도 모릅니다.
제가 학자는 아니지만 새 번역의 번역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순박함이라는 단어를 쓴 것이 참 좋아요. 개역 개정번역본은 이 단어를 [거룩함]이라고 번역했죠. 이는 같은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버전, 그러니까 사본들이 여럿 있는데요. 그 사본마다 조금씩 단어가 다르게 적힌 것이 있는데 아마도 새 번역과 개정 개역의 번역 대상 사본이 달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새 번역이 다른 사본을 선택한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맥락상 순박함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대하는 자신의 마음을 적고 있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마음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를 조금 쉽게 표현하자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대할 때 무슨 다른 사정이나 상황, 정치적인 상황들과는 다른, 그저 당연히 해야 할, 아무 사심이 없는 입장이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죠. 그 말을 순박함이라고 번역한 겁니다. 이는 진실함과도 연결되죠. 이 또한 '거짓이 없는', '바른'과 같은 뜻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백지와 같은, 조금 과한 해석으로는 '바보 같은'이라는 뜻이 더 어울릴지도 모릅니다. 바울은 어떤 사심도 없이, 어떤 계산도 없이 대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거죠.
우리는 한마디 말을 해도 앞뒤를 재고합니다.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이로움이 있을지, 또 해가 될지를 생각하죠. 어떤 결단을 해도 나중을 생각하고, 사회적 파장과 결과들을 따지죠. 그것을 우리는 세상의 지혜라고 곧잘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계산된 생각들이 들어맞지 않았을 때, 억울해하거나 후회를 하게 되죠. 그래서 판단과 예측, 분위기 파악과 힘의 균형, 줄타기를 처세의 기본으로 삼죠. 그런 생각 못하는 사람들은 바보 취급을 받고 뒤처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에게 처세의 기본을 알려주죠. 그리스도인들의 처세라고나 할까요? 그것은 순진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바보처럼 순진하라고 말하죠. 정치적인 계산하지 않아도 괜찮고,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영악하지 않아도, 철저히 준비되지 않아도, 뛰어난 판단이 없어도 괜찮다고요. 어떤 계산도 없이 순박함과 진실함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그는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 채워질 것이라고 말이죠.
그러고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참 억울했습니다. 참 허망했죠. 곁에서 느꼈을 제자들의 허무함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예수님은 권세도 능력도 있으셨죠. 하다못해 인기도 있어서 한마디만 하면 민란도 일으킬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바보처럼 당할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작전이 먹힐 만큼 순진했고, 모자랐죠. 그래서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진함이, 그 모자람이, 그리고 그 억울함이 죽음의 십자가를 부활의 십자가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의 지혜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오직 하나님의 지혜, 그분이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조금 모자라도 괜찮습니다. 사심 없이 순전하기만 해도 돼요. 영악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진실함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때론 진실해서 욕을 먹고, 순전해서 손해를 보기도 하죠. 그래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처세는 뛰어난 머리에서가 아니라 조금 모자란 순박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믿음 하나로, 작은 순종 하나로, 사람들의 손가락질에도 그저 기다리고 기대하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 믿음이 우리의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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