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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묵상일기 04 - 더 많은 것을 짊어지세요.

고린도후서 1:5~6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위로도 또한 넘칩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위로로, 우리가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견디어 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목요일 아침입니다. 일주일의 중반을 넘어갈 즈음, 우리는 조금 지치죠.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좀 힘들고, 때론 출근이 버거울 때도 있습니다. 혹은, 어려운 일을 앞두고는 더욱 그런 마음이 몰려올 때가 있죠. 피하고 싶고 건너뛰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서부터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이르기까지 그 원인은 다양합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한두 번은 아니죠. 거의 매일 반복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하루를 무사히, 어느 때는 의외로(?) 잘 넘기고 돌아오기도 하죠. 생각해보면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는 마음까지 들어 뿌듯함에 이르기도 합니다. 재미있게도 그 뿌듯함은 걱정과 근심, 두려움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는 사실입니다.

 

혹시 이 아침에 어떤 걱정과 두려움이 있습니까? 하고 싶지 않을 일, 피하고자 하는 일이 있나요? 물론 쉬운 일은 없습니다. 거저 얻을 수 있는 일도 없죠. 그런데 우리가 감당하는 어려움만큼, 짊어지는 무게만큼, 하나님께서 힘주시고 능력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피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분은 어둠을 이기는 능력이고, 죽음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그러니까 걱정과 근심보다 큰, 견디는 능력을 주신다는 거죠. 우리의 삶에 아픔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감당해야 할 어려움도 피할 길 없어요. 그런데 주님은 그 앞에 당당히 서는 자에게 견딜만한 힘을 주시고, 감당할만한 능력을 주십니다. 그 능력으로 우리는 사는 겁니다. 그래서 환란이 오히려 감사가 되는 거죠. 오늘도 힘겹게 일어난 만큼 위로와 격려가 가득한 하루 되시길 빕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바울이 이 편지를 쓰게 된 배경이 있죠. 그 배경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늘 본문에서 그의 기분과 생각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바울의 심정을 유추하며 그런 말씀 드렸죠? 그가 고린도 교회로부터 받은 수모나 어려움, 또는 안타까움과 해결되지 않는 부담감에 깊은 고민과 좌절을 겪고 있었던 것 같다고요. 바울도 좌절합니다. 목사도 근심 걱정하고요. 우리는 성정이 다 똑같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바울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왔죠. 그때까지 바울도 혹시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있지는 않았을까요? 이런 말을 하면 바울에 대한 불손한 해석일까요? 물론 모릅니다만 바울이라고 완전했을까요? 우리도 믿음이 있지만 시시때때로 의심이 들고, 원망이 있기도 하지 않습니까? 주로 내 뜻대로, 내 시간대로, 내 요구대로 이어지지 않을 때 더욱 그 원망은 커지죠. 

 

저는 바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원망하거나 낙심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갖춰야 하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나 꺾이지 않는 것이죠. 조금 더 정확하게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나 다시 회개하는 것이고, 빗나가나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초반의 바울을 보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위로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하죠. 그것은 그만큼 그가 낙심했다는 증거죠. 그렇게 낙심하고 절망했는데 하나님께서 위로하셨다고 말하는 겁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수모도 당했는데 그보다 더 큰 기쁨을 주셨다는 거죠.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위로하심도 크다"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생길수록 도우시는 역사는 더 큽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잘 생기지 않는 절망의 기도가 있죠. 큰 병에 걸리기도 하고, 삶의 나락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도 하죠. 그때는 이런 기도가 절로 나오죠.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그런데, 그런 이들에게만 벌어지는 일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과 같은 삶이 주어지기도 하고, 이제는 끝났다 생각했던 기로에서 믿기 힘든 도우심의 손길들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평범한 이들에게는 보기 힘든 기적이 그들에게 일어나죠. 그렇게 하나님은 눈물로 견디고 기다리는 만큼 웃음과 감격을 주십니다. 엎드려 부르짖는 만큼 감사의 찬송이 내 입술에서 우렁차게 울리게 하시죠.

 

우리의 아픔은 아픔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아픔은 반드시 찬송이 될 거예요. 우리의 기다림은 바라는 결과를 보게 될 것이고, 우리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임재하는 경험으로 승화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 땅의 삶을 천국의 삶으로 바꾸는 기적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 소중한 직분이 주어졌고, 권리가 허락되었어요.

 

환란보다 그 너머의 위로를 기대하세요. 걱정보다 그 너머의 도우심을 바라보세요. 때가 되면 가을이 여름을 밀어내듯 걱정이 기쁨에 쓸려가고, 어두운 밤이 새벽을 이기지 못하듯 지금의 아픔은 내일의 찬송으로 덮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환란보다 더 큰 위로를 받을 거예요. 짊어진 십자가보다 더 큰 견디는 힘을 선물로 받을 겁니다. 그러니 더 많은 것을 짊어지세요. 더 큰 힘과 위로를 받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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