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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묵상일기 02 -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고린도후서 1:3~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자녀로 살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삶에서 우리는 인격이 드러나죠. 어떤 인격으로 사느냐가 그의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격은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이미 작정했죠. 여전히 우리 안에 다른 인격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결단하고 선택한 새로운 인격으로 오늘을 살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섰죠. 그런 여러분들을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용감하게 내딛는 발걸음 위에 주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는 하루 되시길 빕니다.

 

이 글을 쓰는 사도바울의 심정은 어떨까요? 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지는 잘 몰라도, 오늘 읽는 본문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조금 감지됩니다. 뭔가 들뜬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약간은 흥분한 듯도 하고 밝은 느낌이 듭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변화를 전해 들었죠. 정확한 내용의 기록은 없지만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느꼈던 불편한 마음, 혹은 안타깝고 어찌할 바를 모를 상황과는 다른 변화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고린도 교회의 상황에 적잖이 당황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수모도 겪은듯하죠. 그리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죠. 돌아온 자리에서 일손이 잡히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자꾸 마음이 걸렸겠죠. 오해가 풀리지 않고, 관계가 깨지면 그것처럼 불편한 것이 없죠. 애써 무시하기에는 중요한 사람들이고, 또한 다른 의미에서는 배신감마저 있는 관계라면 더욱 그렇죠. 저라면 이보다 더 큰 부담감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는 사실이죠. 

 

바울은 자신을 위한 전도여행을 한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이방 지역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복음을 전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마음과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발걸음에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언제나 주님의 기적과 같은 도우심으로 극복하며 전진했었죠. 어려움이 진짜 어려움 되는 것은 그것을 해결할 가능성이 없을 때입니다. 벽에 부딪쳤을 때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낙심을 하게 되죠. 그런데 하나님은 바울에게 때론 즉각적으로, 때론 그 어려움을 통한 또 다른 기적을 베푸시는 것으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울처럼 주님의 도우심을 직접적으로 받으며 사역한 사람도 드물 정도죠. 

 

그런데 그 도움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직접 가서 말을 하면 사람들이 설득될 줄 알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급하게 고린도를 찾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자신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동역자들이었던 사람들마저 등을 돌리는 것을 직접 보았죠.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사람에 대한 원망보다, 배신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도우심, 자신의 말을 통해, 혹은 다른 이적이나 상황의 변화를 통해 전세를 바꾸셨던 하나님의 손길이 없었다는 점이 바울에게는 치명적이었을지도 모르죠.

 

바울뿐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죠. 내가 하면 될 줄 알았어요. 내가 선택하고 진심으로 그 일을 마주하면 다 통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진심이면 진심일수록 하나님께서 아시고 도와주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순수해서, 진심이어서 손해를 보고 억울함을 당하는 상황이 될 때 낙심은 더 커지죠.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왜 안 도와주시냐고 소리치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따질 겨를도 없어요. 가던 길이 막히고, 하던 일이 뒤틀리면 마치 주님의 영이 나를 떠난 것과 같은 절망이 몰려옵니다.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님의 시간을 따릅니다. 그분의 역사는 그분의 계획 속에 있어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주님임을 저는 확신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주님은 응답하시죠. 그런데 주님의 응답에서 중요한 것은, 내 뜻대로 들어주시는지, 혹은 내 뜻에 반대를 하시는지에 있지 않습니다. 답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오직, 내가 더 잘되기를 바라시는 쪽으로 응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스(YES)도 노(NO)도 아닙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죠. 진짜 중요한 점은 그 응답이 하나님의 시간 속에 있다는 거예요. 내가 그 응답에 감사할 때, 내가 그 응답에 동의가 될 때, 그래서 기쁘게 받아들이고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에 합한 마음이 될 때 응답하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기다리셔요. 깊은 절망을 위로로 갚으실 주님을 기대하세요. 비록 나의 바람이 막힐지라도 새로운 문을 여셔서 나의 위로가 되실 주심을 찾으세요. 절망으로 인해 새로운 계획을 시작하신 주님 찾기를 막지 마세요. 반드시 길이 있습니다.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그렇게 위로하시고, 그렇게 용기 주시고, 그렇게 더 나은 내일을 만드시죠. 오늘 절망 때문에 아무 말이나 막 하지 마세요. 곧 여러분이 머쓱해질지도 몰라요. 더 문제는 여러분의 절망이 위로 주시는 하나님을 못 보게 하는 점이죠. 그러니 절망 속에서도 기대는 저버리지 마세요. 내가 서두른다고 빨리 가는 시간이 아닙니다. 시간은 정해진 속도대로 가죠. 그 주님의 속도에 맞춰 오늘도 주님보다 앞서지 않는 하루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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