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7. 07:14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 1:21~22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 튼튼히 서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사명을 맡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자기의 것이라는 표로 인을 치시고, 그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맑은 하늘이어서 감사합니다. 아픔과 고통이 있었지만 지나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감사함과 아울러 먼 우리는 이해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는 이름 모를 피해자들에게도, 그 고통과 아픔을 이길 만큼, 견딜 만큼, 잊을 만큼 충만하고 풍성한 은혜를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고 또 전화위복의 은혜 주실 것에 감사합니다. 지나간 시간을 없다 말할 수 없기에 온 힘을 다해 덮으시고 바꾸시고 채우시는 주님의 위로만을 간절히 구하고 바랄 뿐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많은 질문을 받습니다. 그중에 대략 구분을 하자면 제일 많은 질문이 아마도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던 것 같아요. 마치 자신의 발 앞에 두 갈래의 길이 있는데 어떤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길인가?를 묻는 질문이죠. 그런 질문에 저는 참 당황스럽습니다. 목회자가 점쟁이처럼 어떤 길인지를 선택해줘야 하는가? 에 당황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어떤 길이 하나님의 길인지 저도 몰라서 당황스러운 것도 아니에요. 당당하게 말씀드리는데 저는 어떤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인지 정확히 압니다. 너무 자신만만한가요? 이 정답은 차차 말씀드리기로 하고요. 제가 당황스러운 것은 우리가 선택을 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의아스럽기 때문입니다. 가령, 두 갈래 길이 있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있다면 다른 길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길이라는 뜻 아닙니까? 물론 그러실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더 원하고 더 바라는 길이 있으실지도 모르죠. 그런데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길을 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원치 않으시는 길을 나도 모르고 간다면요?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벌주실까요?
일단 이것은 하나님의 길이고, 저것은 다른 길이라는 착각부터 우리가 고쳐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시잖아요? 다윗이 시편에서 이렇게 노래했죠?
시편 139:9~10 내가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거기에서도 주님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의 오른손이 나를 힘 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이는 어느 길로 가더라도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주님의 손이 미친다는 말씀이죠.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따로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어느 길을 가든지 그곳에서도 함께 하시고, 어느 곳에 이르든지 그곳에서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제 저의 자신만만한 정답을 아시겠죠? 어떤 길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갈등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면 됩니다. 욕심이면 어쩌나? 내가 잘못 선택했으면 어쩌나?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비록 실수해도 하나님이 바로 잡으실 테니까요. 저는 그 확신을 우리 모두가 가졌으면 해요. 너무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실패하면 뒤처진다고요? 실수하면 길을 잃는다구요. 그래서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어떤 문제도 푸시는 분이시죠. 그 믿음으로 당당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오늘 본문이 이와 같은 내용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명확히 말하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분이라고 말하죠. 이것은 기름을 부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를 주님의 제자,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뜻이죠. 그래서 언제나 튼튼하도록 하시고 다른 이들에게 나의 자녀라는 사실을 표로 삼아 광고도 하십니다. 내 목에 명품 딱지를 붙여주신 거죠. 메이드 인 하나님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늘 보호해 주시죠.
어제 묵상의 본문에 그리스도 안에는 "예스"만 있다는 말이 있었죠.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늘 "예스"를 해야 한다고요. 그런데 이것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은혜롭게 "예스맨"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죠.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예스"해야 한다고요. 목사님 말은 틀려도 그저 "예스"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런 뜻으로 말하지도 않았어요. 바울이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가 예스밖에 할 수 없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시며, 우리를 자랑삼으시고 늘 지키시는 분이기에 우리가 하는 일은 어떤 일이든 하나님 손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겨도 그것을 해결하실 하나님이시기에 순종할 수밖에 없고, 어려움이 생겨도 우리를 아끼사 더 귀한 은혜로 채우시기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죠. 어떤 것도 우리를 그분의 사랑에서 떨어뜨리지 못합니다. 그분의 모든 일은 우리를 위한 전투입니다. 그러니 어떤 일도 우리는 전진할 거예요. 우리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시고 그분이 우리의 보호자시며 온전하고 완전하신 리더시니까요. 그러니까 믿고 가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은 없습니다. 다만 내가 가는 길에 하나님이 계실 뿐이에요. 우리를 믿으시기에 나의 길을 지켜보시며 조용하고 은밀한 손길로 최소한의 길라잡이가 되어 주시죠. 마치 아빠가 자녀의 자전거를 잡아주는 것처럼... 그러니 주님을 믿고 조금만 당당해지세요. 주님이 함께하시니 힘을 내어 도전하세요. 미루지 말고 올라가세요. 내 길에서 그분의 도우심이 빛나도록 날아오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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