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묵상일기61 _ 지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는 능력입니다.

2020. 12. 30. 07:16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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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12:12~16  그런데도 암몬 왕 나하스가 우리를 치러 오자, 주 하나님이 우리의 왕인데도, 그것을 보았을 때에 당신들은, '안 되겠습니다. 우리를 다스릴 왕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제 당신들이 뽑은 왕, 당신들이 요구한 왕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왕이 여기에 있습니다. 만일 당신들이 주님을 두려워하여 그분만을 섬기며, 그분에게 순종하여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으며, 당신들이나 당신들을 다스리는 왕이 다 같이 주 하나님을 따라 산다면, 모든 일이 잘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순종하지 않고 주님의 명령을 거역한다면, 주님께서 손을 들어 조상들을 치신 것처럼, 당신들을 쳐서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당신들은 그대로 서서, 주님께서 이제 곧 하실 큰 일을 눈으로 직접 보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새벽은 영하 10도의 기온으로 출발하네요. 현재 새벽 5시입니다. 날씨를 확인하니 체감 온도가 무려 영하 18도라고 하네요. 한낮의 기온 또한 영하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맹추위로 예보되었습니다. 세밑 한파라고 하죠. 그러고 보니 늘 세밑에는 추위가 몰려왔던 기억입니다. 혹시 지난 2020년을 떠나보내기 아쉬워서일까요? 그래도 시간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추위에도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좀 불편하고 고생스럽지만 겁에 질려서 숨는 사람 또한 없을 겁니다. 이유는 다 아시죠? 이 추위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추우면 추울수록 따스한 봄이 더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에요. 비록 오늘 맹추위에 떨며 힘들게 출근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곧 언제 그랬냐는 듯 더워서 힘들다는 말을 하게 될 거예요. 그것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오네요. 그렇게 추위 앞에서 피식 웃고 시작하는 하루 보내시길 빕니다.

사무엘의 설교 아닌 설교는 계속됩니다. 보통 이를 학자들은 사무엘의 고별사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무엘의 사역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계속 묵상하게 되겠지만 그는 여전히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고별사를 합니다. 이는 마치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을 줘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에게 왕이 세워진 것이 끝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왕이 세워졌다고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고, 왕이 있다고 온전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지난시절, 시의적절하게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고통 가운데 있을 때 그들을 구원할 선지자와 사사들을 세우셨고, 그들을 인도할 지도력이 필요할 때 모세나 여호수아 같은 지도자를 통해 일하셨죠.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웃 나라들의 왕정 제도가 좋아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들은 끈질기게 왕을 요구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불안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려운 일이 닥칠 때 또 새로운 지도자가 나올까? 걱정하지는 않았을까요? 그런 걱정을 매번 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두려움에 휩싸이죠. 그럴 때마다 기적이 일어나고 놀라운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지만 또 우리는 미래에 닥칠 어려움에 염려를 하죠. 아무리 그때마다 주님의 도우심과 역사가 일어나도 그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확증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계약을 하려고 하죠. 눈에 보이는 도장을 찍고 싶어 합니다. 확실한 증표를 보여달라고 소리치죠. 그래야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왕을 요구했던 이들의 마음이 그랬을지도 몰라요.

구약의 지혜서라고 불리는 전도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전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더 낫다. 살아 있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가 생각나는 구절이죠. 자신이 영원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이어지는 구절은 이렇습니다.

전 7:4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잔칫집에 가 있다.

앞 절의 말씀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이 구절은 약간의 의역이 필요합니다. 굳이 풀어서 다시 번역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눈 앞에 보이는 즐거움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가 두려움에 빠지는 이유는,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때문입니다. 오늘의 추위가 영원할 것 같고, 오늘의 아픔이 전 인생을 삼켜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자신을 던져버리는 사람들을 전도서 기자는 어리석다고 말하고 있는 거죠. 이는 사무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왕이 주어진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죠. 그 왕을 주신 하나님, 그리고 진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보이지 않는 그분을 알지 못하면, 왕이 아니라 왕 할아버지가 우리 앞에 세워져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어제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자신의 성장 배경을 설명하시는데 참, 어디서 듣기 힘든 이야기더라고요. 우리나라 근대와 현대사의 씁쓸한 자화상 같다고나 할까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어머니와 대를 잇고자 하는 집안 어른의 강압으로 이루어진 두 집 살림, 그 안에서 얽히고설킨 자녀들의 이야기, 듣는 내내 참 힘들고 어렵게 자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찾아오는 남보다 못했던 아버지, 가난한 시절과 소외되고 아픈 현실들을 고스란히 겪으며 산 세월들이었죠. 그런데 제가 놀란 것은 그분의 태도였어요. 다 표현은 못했지만 아마도 이 정도의 어린 시절이라면 당연히 상처와 아픔을 가슴 한편에 담아두기 마련이죠. 그런데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시대 아버지가 불쌍하고, 작은 엄마도 희생자예요."

작은 엄마와 사는 아버지, 그 자식들과는 달리 소외받으며 살았던 소위 정실부인의 아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 싶어요. 그런데 그런 마음 때문에 그분 가슴에 아픔이 없더라고요. 저는 이것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아픔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들을 읽는 능력'이라고요.

보이는 것에 내 삶을 맡기지 마세요. 지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는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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