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묵상일기65 - 조급해 하지 마세요.

2021. 1. 5. 07:06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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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13:8~15  사울은 사무엘의 말대로 이레 동안 사무엘을 기다렸으나, 그는 길갈로 오지 않았다. 그러자 백성은 사울에게서 떠나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사울은 사람들을 시켜 번제물과 화목 제물을 가지고 오라고 한 다음에, 자신이 직접 번제를 올렸다. 사울이 막 번제를 올리고 나자, 사무엘이 도착하였다. 사울이 나가 그를 맞으며 인사를 드리니, 사무엘이 꾸짖었다. "임금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셨습니까?" 사울이 대답하였다. "백성은 나에게서 떠나 흩어지고, 제사장께서는 약속한 날짜에 오시지도 않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가는 제가 주님께 은혜를 구하기도 전에, 블레셋 사람이 길갈로 내려와서 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할 수 없이 번제를 드렸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셨습니다. 주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임금님이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명령을 어기지 않으셨더라면, 임금님과 임금님의 자손이 언제까지나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주님께서 영원토록 굳게 세워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임금님의 왕조가 더 이상 계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임금님께 명하신 것을 임금님이 지키지 않으셨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달리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아서, 그를, 당신의 백성을 다스릴 영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사무엘이 일어나서 길갈을 떠나, 베냐민 땅의 기브아로 올라갔다. 사울이 자기와 함께 있는 백성들을 세어 보니, 약 육백 명쯤 되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 눈 소식이 있네요. 출근길 안전할 수 있도록 주의하세요. 기온은 어제보다 높을 전망이지만 여전히 영하권의 추위입니다. 특별히 건강에 조심하시고, 마스크와 손 씻기, 방역관리에 조금 더 주의하시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뎌져 가는 우리 모습이 있죠. 지치고 힘들어질수록 상황판단은 흐려집니다. '언제 끝날까?' 하는 조바심은 때론 엉뚱한 결과를 낫습니다. '무슨 일이 있겠어?' 하는 마음이 대표적이죠. 문제들은 지나갈 것입니다. 사라지지 않는다면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극복할 수 없는 일이라면 적응하게 되겠죠. 그렇게 조금씩 나아갈 것입니다. 그 일이 조금 오래 걸려도 우리는 나은 방향으로 전진하게 될 거예요.

사울도 조바심이 났을 거예요. 눈앞의 가시였던 블레셋을 보기 좋게 공격했지만 그 후과가 심각합니다. 블레셋이 작정하고 달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두려움에 떨었죠. 도망가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폼을 잡고 왕 노릇해야 하는데 영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뭔가 획기적으로 분위기를 반전할 일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예부터 역전의 명수 하면 이스라엘이었죠.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기적과 같은 일들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무엇으로요? 하나님으로부터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늘 승리했습니다. 그분이 앞서면 모든 것이 뜻대로 되었죠. 위기에 놓인 사울에게는 오직 한 가지 방법만이 남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시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방법으로 상징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사울은 그분 앞에 예배하기를 바랐을 거예요. 그래야 반전의 기회가 있으니까요. 아마도 계속 도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진정시킬 묘안으로도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는데요. 주님께 드리는 예배의 주관자가 자신이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당시 제사장이었던 사무엘이 와야 가능한 일이었죠. 사무엘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공식 중재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오지를 않습니다. 며칠을 기다렸는지 알 수는 없어요. 아마도 하루가 천년 같았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리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조바심이라는 것이 본래 그렇습니다. 조급하면 시간 개념이 사라지죠. 조급하면 상황을 오판합니다. 그렇게 조급함이 나를 옥죄죠.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자신이 직접 제사장이 되는 것이었어요. 조급함은 자신이 법칙도 만들고, 원칙도 자신이 만들죠. 그렇게 자기중심적으로 끌고 가는 힘이 조급함에 있습니다. 구약시대, 예배의 주관자가 제사장만의 것이었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런 식의 예배는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나만을 위한 예배가 되어버리죠. 마치 조급함에 순서도, 절차도, 심지어 예의까지 던져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는 광야 시대 아론의 금송아지를 연상케 하네요. 그때도 모세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급했습니다. 모세가 오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죠. 그래서 한 행동이 자신들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자랑스러웠을지도 몰라요. 자신들이 만들고 세운 것이 하나님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들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대노하셨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붙여도, 아무리 예배의 형식을 취해도, 이는 자신만을 위한, 자신만의 예배가 되기 때문이죠.

간혹 우리는 주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합니다. 아니, 주님이 역사의 주관자시고, 시간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잊습니다. 그래서 내 스스로 시간을 통제하려고 하고, 역사를 쥐락펴락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왜요? 조급해서요. 이것이 자신이 주인 되는 행동입니다. 이렇게 사울은 하나님의 통로가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갑니다. 내가 하나님 되는 것? 내가 주인 되는 것? 그거 별거 아닙니다. 시간을 자신 마음대로 조절하고, 상황을 자신 뜻대로 해석하는 것, 그것이 자기가 하나님 되려는 행동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조급해하지 마세요. 우리의 시간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때를 기다리며 그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순종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조급하면 안 됩니다. 조급하면 할수록 나의 판단은 무뎌집니다. 조급해지면 하나님 음성이 들리지 않아요. 조급하면 주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싶다면 맡기세요. 조금만 긴 호흡으로 기대하며 기다리세요. 많이도 아닙니다. 지금보다 한 템포만 더 기다리세요. 마침내 사무엘이 오듯, 분명히 주님의 시간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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