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3. 06:57ㆍ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삼상 11:1~8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의 야베스를 포위하였다. 그러자 야베스 사람들이 모두 나하스에게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우리가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하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암몬 사람 나하스는 "내가 너희의 오른쪽 눈을 모조리 빼겠다.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는 조건에서만 너희와 조약을 맺겠다" 하고 대답하였다. 야베스 장로들이 또 그에게 제안하였다. "우리에게 이레 동안만 말미를 주셔서,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역으로 전령들을 보내도록 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구하여 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우리가 항복하겠습니다." 전령들이, 사울이 살고 있는 기브아에 가서 백성에게 그 사실을 알리니, 백성들이 모두 큰소리로 울었다.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백성이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야베스에서 온 전령들이 한 말을 그에게 일러주었다. 이 말을 듣고 있을 때에,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이 세차게 내리니, 그가 무섭게 분노를 터뜨렸다. 사울은 겨릿소 두 마리를 잡아서 여러 토막으로 자른 다음에, 그것을 전령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스라엘 모든 지역으로 말을 전하라고 보냈다. "누구든지 사울과 사무엘을 따라나서지 않으면, 그 집의 소들도 이런 꼴을 당할 것이다." 주님께서 온 백성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시니, 모두 하나같이 그를 따라나섰다. 사울이 그들을 베섹에 모으고 수를 세어 보니, 이스라엘에서 삼십만 명이 왔고 유다에서 삼만 명이 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모임들이 금지되고 보고픈 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고통입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공동체 가족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탓하고만 있을 수는 없죠? 만나지 못해도 대신할 방법들은 많습니다. 전화가 그렇고, 문자가 그렇습니다. 소통을 하려면 방법은 많아요. 다만 마음의 문제일 뿐이죠. 움츠리면 더 춥듯이, 감추면 더 비밀이 많아지듯이, 그래서 부자연스러워지듯, 하지 않으면 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만나지 못해 불편하다고 불평한들 사랑이 커지지는 않습니다. 그저 생각나면 연락하세요. 통신기술이 이러라고 발달했는지도 모릅니다. 보고 싶으면 전화하세요. 나누고 싶으면 온라인 모임 가지세요. 안된다고 불평하기 전, 할 수 있는 것을 할 때 내 앞의 문제들이 어느덧 사라집니다.
당시 암몬은 요단강 동쪽을 차지하고 있던 민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동편에는 암몬뿐만 아니라 위로 아람과 아래로 모압, 에돔이 자리하고 있었는데요. 아람은 오늘날 시리아가 되었고, 암몬과 모압은 요르단을 지칭합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이 암몬이라는 이름에서 온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러고 보니 이스라엘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남북으로 꽉 막힌 형세입니다. 서쪽에는 늘 싸우는 블레셋이 있었죠. 재미있는 것은 암몬이 이스라엘과 뿌리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의 조카였던 롯의 후손이 암몬 족속을 이루었으니까요. 그런 암몬이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이유는 당시 전쟁의 근본 목적이었던 땅을 늘리려는 것이었죠. 그럴 만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지형상 북쪽의 갈릴리 호수에서부터 남쪽의 사해까지 흐르는 요단강을 중심으로 동서가 구분되어 있었죠. 대부분 서쪽은 이스라엘이, 동쪽은 이방 족속들이 차지했어요. 그런데 암몬 지역의 요단강 동쪽 부분이 이스라엘의 땅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 그곳을 필두로 요단강을 넘어 가나안에 입성했기 때문에 그 지역을 므낫세 반지파가 차지하게 되었고 길르앗이라고 불렀죠. 그 이후, 이 땅이 암몬과 대치하는 애매한 땅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땅을 놓고 암몬과 전쟁이 잦았어요. 이미 사사시대에도 이 땅을 놓고 한판 전쟁을 치른 적이 있었죠. 그때 사사 입다에 의해 패퇴했던 암몬이 이제 다시 전쟁을 걸어왔던 겁니다.
아마도 이번에는 암몬이 단단히 버르고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전쟁을 선포하자마자 길르앗 사람들이 혼비백산했던 것을 보면 말이죠. 그런데 지명 이름이 길르앗 야베스입니다. 이 뜻이 길르앗의 메마른 땅이라는 뜻이에요. 아마도 땅이 광야로 덮여있었던 듯해요. 그런데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메마른 영성이 떠오릅니다. 혹시 그 땅의 사람들이 영적으로 메말라있지는 않았을까요? 그래서 공격을 더 받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문자놀이를 더 하자면, 암몬의 왕 '나하스'도 그렇습니다. 어원적인 의미를 찾으면 나하스는 뱀이라는 뜻이 있어요. 뭔가 알레고리컬하지만 느껴지는 부분이 있죠? 어쩌면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고, 많은 문제에 봉착하는 이유는, 내 영이 메말라서일지도 모릅니다. 내 영이 은혜의 통로를 잃고, 감사를 잃어서 메마르고 고갈되면, 이렇게 외부의 조롱을 받죠. 조금만 건드려도 흔들리고, 조금만 자극해도 터질 듯 불안해집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이 혼자만으로 이 일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도움을 요청하죠.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렇게 도움을 요청할 기회를 암몬이 제공합니다. 전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오히려 도움을 차단하고 고립시켜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암몬은 왜 그랬을까요? 그렇게 온 이스라엘이 달려들어도 이길 자신이 있어서였을까요? 아니면 이스라엘이 공동체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은 것일까요?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사무엘서를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이 에피소드의 핵심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전쟁은 혼자 치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싸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려는 목적이라는 뜻이죠. 그렇게 온 이스라엘이 들끓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울의 분노가 그 중심이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죠. 그렇게 목숨을 걸고 모인 숫자가 33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다시 전쟁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싸움이 나 혼자만의 싸움이라고 여길 때가 많습니다. 많은 유혹과 갈등, 고민과 아픔 등의 문제들이 늘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죠. 때론 자신의 성격과 결부하고, 때론 나만의 처지, 환경과 연결하여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여깁니다. 또 어떤 이들은 개인적인 문제들을 공유하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기도 하죠. 그런데 아무리 개인적인 것일지라도 영적인 싸움은 공동체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기도하고 싸워야 하죠. 그러려고 믿음의 가족들이 있고,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같이 울고, 같이 해결해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같은 마음으로 서야 하죠. 그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공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공동체가 있을 필요가 없죠. 인간이 본래 그렇습니다. 친구들과 아픔을 나누고, 도움도 요청하고, 서로 힘이 되어 성장하는 것이 본래 인간의 모습이죠. 그렇게 사회적 존재로 세우셨습니다. 그것을 교회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주셨죠. 그런데 교회가 그 공동체의 본질을 잃어버립니다. 교회의 타락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함께 영적인 적과 싸워주고, 함께 울어주고, 함께 기뻐해 주는 그 마음을 잃는 것이 교회의 근본적인 타락이죠. 아픔을 같이하고, 슬픔을 나누며, 기도하고, 격려하며 영적인 공격들을 이겨나가는 것, 그것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혼자 싸우지 마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혼자일수록 수렁에 빠집니다. 혼자일수록 그 답답하고 힘겨운 늪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내 안의 갈등, 고민과 염려, 개인적인 삶의 문제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순간, 이미 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께 맡기는 문제가 되고, 공동체가 함께 안고 기도해야 할 문제예요. 그러니 혼자되지 마세요. 신앙생활을 혼자 하지 마세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듯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풀어야겠다고 여겼던 나만의 문제를 드러내고 열면, 나도 모르게 어디선가 준비된 도움의 손길들이 찾아옵니다. 내가 손을 내밀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나요. 그것이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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