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묵상일기54 - 하나님을 대신할 '사람'은 없습니다.

2020. 12. 21. 06:28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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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10:23~25  사람들이 달려가 거기에서 그를 데리고 나왔다. 그가 사람들 가운데 섰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커 보였다. 사무엘이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뽑으신 이 사람을 보아라. 온 백성 가운데 이만한 인물이 없다." 그러자 온 백성이 환호성을 지르며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 사무엘이 왕의 제도를 백성에게 알려 준 다음, 그것을 책에 써서 주님 앞에 보관하여 두고, 온 백성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전히 맹추위가 기승을 부립니다. 오늘 새벽도 영하의 기온에서 출발하네요. 그럼에도 지난주보다 견딜만한 것은, 적응이 되어서 그런 것일까요? 참으로 우리의 적응력은 놀라울 정도죠.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죠. 제 어릴 적에는 날씨가 더 추웠던 것 같아요. 사실 온난화 영향도 있을 테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옷이며, 난방들의 기술이 더 발달했기 때문이지 뭐 그리 옛날과 더 기온 차이가 컸을까 싶지만, 그리도 온몸이 부들거릴 정도였던 기억이 납니다. 연실 '추워 추워' 소리를 하며 아랫목 이불을 덮어쓰고 떨었어요. 그때마다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추워 추워하면 더 춥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지는 쉽지 않았지만 본격적인 겨울에 들어서고 여전한 추위에도 어느덧 저는 아랫목이 아닌 골목길에서 친구들도 뛰놀기에 바빴습니다. 추위가 물러나서가 아니라 추위에 적응해서겠죠? 그러니까 적응에는 우리의 결단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상황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그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믿는 것이 적응력에 필수적이라는 뜻이죠. 

제비뽑기를 해도 주님의 계획은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예언자 행세를 할 때만 해도 사울마저 예언을 하느냐? 고 비꼬던 사람들도 이제는 그를 왕으로 인정합니다. 절차적으로 이견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었죠. 누구 하나 영향을 줄 수 없는 제비뽑기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생각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자신의 주장을 위해 늘 자신 위주로 생각하고 결정하는데 익숙하죠. 조금만 자신에게 불리해도 참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절차를 따지고 더 유리한 시스템을 만들려고 급급하죠. 그런데 제비뽑기는 그 어떤 영향도 배제된 상태인지라 우리의 할 말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 생활을 할 때도 그랬죠. 아론과 모세를 필두로 기나긴 여행을 해야 할 그때, 사람들은 아론과 모세의 지도자 자격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각 지파의 지도자들을 모아 그들의 지팡이를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 놓게 하셨죠. 그리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이때 아론의 지팡이에서만 싹이 나는 일이 벌어졌어요. 앞뒤가 잘린 죽은 나무 지팡이에서 싹이 났으니 모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설명하면 기적의 지도력이지만 우리의 못난 모습으로 해석하면 압도하는 권세가 없이는 늘 딴생각을 하는 인격이라는 말이 되죠. 

아무튼 그렇게 사울이 왕이 되었습니다. 인물도 훤하고, 체격도 훤칠한 사람이 세워졌습니다. 모두들 왕으로 인정할만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라면 우리의 지도자다 믿기로 다짐했겠죠? 그렇게 사람들의 바람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선지자나 제사장도, 왕이나 목회자도 그가 하나님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 후, 왕의 제도에 대해 백성들에게 설명합니다. 재미있죠? 왕이 세워졌으면 그가 자신의 제도를 만들어서 공포하는 것이 맞을 텐데, 왕을 세워놓고도 그 제도는 사무엘이 정합니다. 그리고 그 제도에 대한 설명들, 그러니까 헌법 같은 것이 되겠죠? 그것을 주님의 성전에 보관합니다. 이를 다시 말하면, 왕이 세워졌지만, 나라가 세워지고 모든 질서가 있지만, 그러나 그 모든 제도 위에 하나님의 제도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처럼 보여요.

적응력 이야기를 서두에 했죠? 조금만 지나면 익숙해집니다. 내가 할 수 있죠. 물론 시작 전에는 떨리고 조마조마해서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도 구하고 하죠. 그런데 이제는 할만합니다. 적응력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죠. 나도 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한 걸음 나아가죠.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하나님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 안에 있죠. 내가 할 수 있어도 그 속에서는 하나님의 운행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내가 겨울을 잘 나고, 건강해서 100살을 살 수 있을 것 같아도, 우리의 생사화복은 여전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하고, 세상을 호령할 꿈과 능력이 있어도, 그래도 내 미래를 주관하는 이는 내가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적응할수록, 우리 안에 더욱 빛나야 하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그런 힘과 노력이 우리의 믿음이고 신앙이죠. 내가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아버지시니까요. 잘 나갈 때, 힘이 있을 때, 특별히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될 때, 그때도 하나님은 여전한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는 우리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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