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묵상일기52 - 잘못된 길, 그 중심에 기억이 있습니다.

2020. 12. 18. 06:59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반응형

삼상 10:17~20  사무엘이 백성을 미스바로 불러 주님 앞에 모아 놓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전하였다. "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고, 내가 너희를 이집트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던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 내었다. 그러나 오늘날 너희는, 너희를 모든 환난과 고난 속에서 건져 낸 너희 하나님을 버리고, 너희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나에게 요구하였다. 좋다, 이제 너희는 지파와 집안 별로, 나 주 앞에 나와 서거라!"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앞으로 나오게 하니, 주님께서 베냐민 지파를 뽑으셨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눈 소식이 있네요.

생각해보면 눈이 내린다는 것은 날씨가 흐리다는 것이죠.

비나 눈은 기온의 차이일 뿐 같은 종류니까요.

그런데 비보다 눈은 우리에게 훨씬 큰 낭만을 줍니다.

왠지 하얀 눈이 내리는 날이면 기분이 좋아지죠.

지난번 첫눈이 내리던 날,

우리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눈 속을 뛰어다니는 모습들을 영상으로 보았어요.

추위도 아랑곳없이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냥 즐거워 보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나이가 드니 눈이 주는 낭만을 잃은 제 모습이 애처롭기도 했습니다.

눈이 오면 벌써 길 걱정이 앞서고,

혹시 다치는 사람은 없을까? 교통은 괜찮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제가 약간은 삭막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참 다르죠?

같은 눈을 보면서도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눈을 보게 되니까요.

물론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닙니다.

시선의 차이일 뿐이죠.

 

그래도 오늘 기온은 어제보다 높다고 하네요.

그나마 조금은 가슴을 펴고 겨울의 향취를 즐기는 하루 보내시길 빕니다.

 

 

드디어 대관식이 열립니다.

아마도 사람들에게는 축제의 장이 되었을 것 같아요.

그리도 바라던 일이 벌어졌으니까요.

그러나 대관식은 그런 축제의 분위기는 아니었던 듯합니다.

그 이유에는 사무엘의 충고가 한몫했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하나님의 뒤끝이라고 하면 조금 불경한 이야기가 될까요?

아무튼 하나님은 왕을 선출하게 된 배경을 콕 집어서 말하고 계십니다.

마치 '이것은 옳지 않은 일이나 너희들이 원해서 해 주는 것'이라는 뜻으로 말이죠.

 

이는 우리에게 또 다른 묵상 거리를 제공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에 그저 어린아이처럼 즐거워만은 할 수 없는 묵직함을 선사하죠.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습니다.

자식을 이기지 못하죠.

자녀들을 위해 권면과 충고, 그리고 올바른 가이드를 하지만

끝까지 고집을 피우고 조르는 자식에게 져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져 준다고 그것이 다 옳은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안타까움의 져줌이죠.

그리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그게 부모의 사랑이죠.

 

하나님도 그러시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결코 '어디 두고 봐라. 잘되나?'라는 마음은 아니셨을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분명히 전후좌우의 설명을 하시죠.

 

그 요지는 한마디로 이렇습니다.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면 불평이 생긴다"고요.

하나님이 하신 일들, 

그분이 도우시고 보살피신 손길을 기억하지 못하자,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왕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본래 그렇습니다.

좋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나쁜 것만 기억에 남습니다.

나를 기쁘게 하고,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면,

나에게 준 상처, 아픔,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태도만이 남아요.

참 신기하게도 그 은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수많은 도움을 받았을지라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의 기억은 단 하나의 잘못, 1%, 아니 0.1%의 나쁜 기억만 온전히 남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나쁜 기억, 나의 불만은,

결국 좋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받은 은혜를 잃어버렸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 되죠.

 

우리가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되는 경우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중에 단연코 가장 큰 실수는,

'내가 무엇을 기억하느냐?'에서 나옵니다.

'은혜를 기억하느냐? 상처를 기억하느냐?'

'받은 것을 기억하느냐? 준 것을 기억하느냐?'

'나를 기쁘게 한 일들을 기억하느냐? 기분 나쁘게 한 일들을 기억하느냐?'

이에 따라 관계의 길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 인생의 길이 정해지죠.

 

잘못된 길, 잘못된 선택의 중심에는 나의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옳은 길, 바른 선택의 중심에도 내가 무엇을 기억하느냐? 가 있어요.

우리에게는 늘 선한 것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쁨이나 행복감만 흐르지 않아요.

꽃길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일들 가운데는 높은 산도, 험난한 골짜기도 있어요.

거친 광야와 삼킬 것 같이 일렁이는 파도도 있습니다.

그 모진 시간들을 지나고 선 지금,

내가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나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수없이 겪은 고난을 기억하는 이에게 인생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길이 될 것이고,

그럼에도 그 사이 견디게 하신 은혜, 다시 일으켜 세우신 복을 기억하는 이에게는,

살만한 인생, 감사의 길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요?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