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묵상일기 05 - 여러분의 습관은 안녕하십니까?

2020. 10. 14. 07:13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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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1:9   
한 번은 엘가나 일행이 실로에 있는 주님의 집에서 음식을 먹고 마신 뒤에, 
한나가 일어나서 자리를 떴다. 
그때에 제사장 엘리는 주님의 성전 문설주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새벽은 쌀쌀을 넘어 춥기까지 하네요.
옷을 걸쳐 입고, 묵상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어김없이 어제는 가고,
어김없이 새로운 하루는 옵니다.
때론 시간이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지만,
때론 시간이 나를 게으르게 하기도 합니다.
반드시 또 올 시간이기 때문이죠.

맞습니다.
우리가 실수를 해도 그것이 마지막은 아닙니다.
다시 기회가 있고,
다시 시간은 주어지죠.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실수가 반복될수록,
우리에게는 실수가 아닌 습관이 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이 나의 삶이 되고,
그렇게 나의 삶은 나의 생각과는 다른 길을 가죠.

오늘 묵상의 주인공은 엘리 제사장입니다.
엘리 제사장에 대한 이야기는
사무엘서 초반에 몇 번 더 묵상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그를 반면교사 삼을 일들이 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사무엘서의 배경은 사사시대입니다.
그러니까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정착한 후,
사사들로 인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시대인 거죠.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이름,
드보라, 기드온, 삼손 등이 그 사사들입니다.
보통 12명의 사사들을 주요 인물로 보죠.
그중에 엘리는 속하지 않지만,
그 또한 40년을 제사장으로 지냈던, 
삼손을 잇는 이스라엘의 사사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서에 등장하는 엘리는,
나이가 들어 제사장직의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죠.
아마도 그의 아들들이 그를 대신하여
제사장의 임무를 맡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엘가나 가족은 매년, 
성막이 있는 실로에 와서 예배를 드렸던 모양이에요.
그곳에서 가족들이 음식을 먹었던 모양입니다.
주일공동체식사와 같은 모습일까요?
아무튼 즐거운 식사 자리여야 할 텐데
한나에게는 오히려 괴로운 자리였을 테죠.
이미 묵상했듯이,
주의 성전에 와서 이런 공동체 식사를 할 때마다
브닌나의 괴롭힘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다른 일행들, 혹은 가족들에게
자식 자랑과 함께 자녀 없는 한나를 비웃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 한나에게 식사 자리가 즐거웠겠습니까?
그래서 음식도 못 먹었을 텐데요.
어제 묵상에서의 엘가나의 짜증 아닌 짜증은
이 자리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선지 한나는 
그 자리를 조용히 빠져나와
성전의 다른 기도할 수 있는 곳으로 갔던 모양입니다.
그때 엘리 제사장과 대면을 하게 되죠.
기록에 보면, 엘리 제사장은 성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다고 하죠.
이 대목이 특이합니다.
제사장이 머무는 곳은 성전이죠.
그렇다면 그냥 성전이라고 하면 될 텐데,
기록은 그가 있는 곳의 상태까지 알려줍니다.
이를 보고 요즘 말로 디테일이 쩐다고 하나요?

그런데 디테일이라기보다
뭔가 암시하고자 하는 의도가 보여요.
유독 엘리 제사장과 관련된 기록에는
자주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자’에요.
사무엘서에서 그의 의자는 무려 세 번이나 등장하는데요.

의자가 뭐라고 세 번씩이나 등장할까요?
등장할 때마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었어요.
게다가 그가 죽는 장소 또한 의자였습니다.
이는 그가 늘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뜻이겠죠.
그러니까 그는 늘 습관적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던 거죠.

제사장이 의자에 앉아 있어요.
그것도 성전의 예배하는 곳이 아니라
성전 어귀 사람들 드나드는 곳에 앉아 있었죠.
마치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감시자처럼 말이죠.
저는 그가 자신의 본분을 잃고
엉뚱한 장소에 앉아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가 예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예배를 감시하는 사람으로 서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늘 그 자리에 앉는 습관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해요.

우리는 올해 들어서면서
감사노트를 작성하며,
늘 매일 5가지의 감사를 찾아내는 습관을 갖기로 했죠.
이제 찬 바람이 부는 계절이니,
한 해를 돌아볼 때가 되었죠.
그래서 한 번 묻습니다.
여러분의 그 습관은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매일 묵상을 통해
말씀과 가까이하기로 했죠.
주님을 더 알기 위해 하루의 2~30분을 투자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습관을 만들어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 습관은 지금 안녕하신가요?

많은 사람들이 상황 탓, 환경 탓을 합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자신의 습관을 만드는 일에는
그리 큰 마음을 두지 않는 것 같아요.
내 작은 습관이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 환경까지 바꾼다는 사실을 경험하지 못해요.
물론 우리의 노력만을 강조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사회구조적인 모순이 존재하고,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두터운 카르텔이 존재합니다.
개인이 할 수 없는 일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 선 우리들은 싸워야 합니다.
옳지 않은 일에 대해 싸워야 하죠.
그런데 그 싸움이 나부터 고치는 일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자주 잊습니다.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나부터 변화시켜야 가능하기 때문이죠.
이것이 습관의 힘입니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소망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소망을 이루는 사람은,
오늘부터 하루 30분씩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는 사람이죠.
하나님께 가까이하고자 하는 마음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매일 조금씩 주님의 말씀을 나누며,
그분의 언어에, 그분의 마음에, 그분의 생각에
내가 녹아져 가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엘리 제사장의 습관이 
성전 문설주 곁 의자가 아니라 지성소였다면,
그가 관심하는 것이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불의함의 대명사가 된 아들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실패한 제사장이라는 오명으로 점철된 그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나의 습관에 나의 인생이 달렸습니다.
나의 습관에 나의 가족,
특별히 나의 자녀들의 미래도 달렸어요.
그 습관이 다시금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습관이 좋은 시간을 만들고,
좋은 습관이 좋은 미래를 여니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실수가 습관 되게 하지 마세요.
나의 다짐이 습관 되고,
나의 결단이 습관 되는 우리 되길 빕니다.
내가 늘 서는 곳,
내가 늘 품는 생각,
내가 늘 하는 행동이 나의 걸음이 됩니다.
우리의 걸음이 주님을 기쁘시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 우리의 좋은 습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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