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묵상일기 04 - ‘울지 마요.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2020. 10. 13. 07:03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반응형


삼상 1:8
그럴 때마다 남편 엘가나가 한나를 위로하였다. 
"여보, 왜 울기만 하오? 
왜 먹지 않으려 하오? 
왜 늘 그렇게 슬퍼만 하는 거요? 
당신이 열 아들을 두었다고 해도, 
내가 당신에게 하는 만큼 하겠소?"


좋은 아침입니다.
피곤한 무릎 일으켜 세우고,
오늘도 기도로 출발하는 여러분들을 응원합니다.
일상의 무게들이
피할 수 없어서 더 무거운 나날이지만
그 무게를 숙명처럼 기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하루가 순종의 하루이길 빕니다.

오늘 본문은 좀 생뚱맞습니다.
한나의 남편 엘가나의 이런 물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내가 잘해주는데 왜 우냐고 하는 걸까요?
아니면 더 잘하겠다는 다짐일까요?
전자라면 짜증이고, 
후자라면 다짐이죠.
어떤 의미로 이 한 구절이 들어갔는지
저는 좀 종잡기 힘듭니다.
물론 글의 흐름상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엘가나가 한나를 무척 사랑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제 생각은 좀 다르네요.
어떤 말이든,
설혹 그것이 아내를 사랑해서 하는 말일지라도,
엘가나의 이런 태도는 결코 아내를 위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으로서, 남자로서,
나와 다른 아내, 여자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관점도 다르고, 시선 또한 다르죠.
마치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듯
이질감이 분명한 사이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서로 소통과 결합을 이루는 것을 보면
사랑이 모든 것을 덮어주는 위대한 장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그 사랑을 잃으면
모든 것이 바닥을 드러내기도 하죠.

사랑은 눈에 콩깍지가 씌인 것이라고 하죠.
아마도 앞이 가려 사물을 정확히 보지 못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같습니다.
이는 정확히 보면 같이 할 수 없는 관계라는
의미처럼 들립니다.
그러니까 서로는 분명 함께 할 수 없는, 
그런 거리가 있는 관계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죠.
그래서 사랑이 위대한 것이고, 
중요한 것이 되는지도 몰라요.

제 마음이 삐뚤어진 것일까요?
오늘 본문의 엘가나는 좀 짜증이 난 것처럼 보여요.
아마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내가 이렇게 잘해주는데 왜 맨날 우냐?”
뭐 이런 짜증 말이죠.
그러고 보면 남자들은 참 많은 착각을 하며 사는 것 같아요.
자기가 잘해주면 다 좋아질 거라 생각하죠.
자신이 뭘 하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아요.
그런데 아내에게 남편과 아들은 다른 것입니다.
남편은 남편의 기쁨이 있고,
아들은 아들의 기쁨이 있는 거죠.

어쩌면 이해와 사랑은,
빈 마음을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아니라,
그 빈 마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인정해 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들이 없어 슬픈 것은 사실이니까요.
다만 그것이 너의 잘못이 아님을 알려주는 것이 
이해일지도 몰라요.

이 대목에서 최근 즐겨봤던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어요.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는데요.
산부인과의 진료 장면이었습니다.
유산을 한 산모에게
의사 선생님이 무심하게 그 사실을 알립니다.
산모는 슬픔에 빠지고 한참을 울죠.
그 울음에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아이를 잃은 슬픔보다 더 큰 것은,
아마도 자책일 겁니다.
자기 때문이라는 자책이 더욱 가슴을 짓눌렀을 거예요.
저는 그때, 곁에 있던 남편을 보았습니다.
아무 말도, 아무 위로도 하지 못하는 남편,

그도 그럴 것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그 침묵에는 묘한 음성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 말하지 않지만,
마치 다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또한 그 아내의 자책에 동조하는 것 같았어요.
아이의 엄마, 이것은 당신의 문제라고…
아이를 간수하지 못한 당신 때문이라고…

그때 곰같이 무심한 의사가 산모에게 한 마디 합니다.
“이건 정말 별일 아니에요.
유산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잘못되어서 안타깝지만 이제 원인을 찾았으니
잘 치료하면 다시 임신할 수 있어요. 
환자분이 무슨 잘못을 해서 아이가 유산된 게 아니에요. 
환자분은 잘못이 없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울지 마세요.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한나의 일은 개인의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의 문제였어요.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일,
그분이 이루고자 하는 일에 쓰임 받는 일이죠.
때론 그 아름다운 일이
나에게는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다 내 잘못이 아니에요.

나의 인생을 내 잘잘못으로 따지면
그 인생은 나만의 인생이 되지만,
나의 인생을 주님이 다루시는 섭리로 보면,
그 인생은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그러니 자책하지 마세요.
아픔에 머물지 마세요.
내 작은 일상을 그분의 섭리에 맡기세요.
그러면 눈물의 무게는 감사의 고백이 되고,
낙망과 억울함의 자리는 
기대와 또 다른 희망이 시작되는 꿈이 될 거예요.

아무 일도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는…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