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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사무엘서묵상일기 03 -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이니


삼상 1:6~7
주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아 놓으셨으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는 한나를 괴롭히고 업신여겼다. 
이런 일이 매년 거듭되었다. 
한나가 주님의 집으로 올라갈 때마다, 
브닌나가 한나의 마음을 늘 그렇게 괴롭혔으므로, 
한나는 울기만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매일 아침 첫인사로,
저는 좋은 아침을 외칩니다.
저의 아침인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이 인사는,
영어 인사, 굿모닝을 번역한
그런 단순한 인사는 아니에요.
그렇다고 입버릇처럼 하고자 하는
그런 인사도 아닙니다.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기 껄끄러운 날들이 있어요.
안 좋은 일들이 있거나,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있을 때,
나만 밝은 거처럼,
홀로 사는 사람처럼,
좋은 아침을 외치는 것이 마음에 걸릴 때가 있어요.

사실, 오늘이 좋아서 좋은 아침을 외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이 어찌 내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그런데 굳이 ‘좋은 것’을 찾겠다는 다짐,
단 1%라도 좋은 일, 좋은 것, 좋은 마음을
품겠다는 다짐이 이 인사에 담겼어요.
그러니 우울한 날에 더 크게 인사해야 하고,
컨디션이 떨어지는 날,
더 힘을 내서 인사해야 하는 말로,
저는 좋은 아침을 외칩니다.

오늘도 수만 가지의 일들이 있을 거예요.
거기에는 아픔도, 슬픔도, 걱정도, 염려도,
기분 상하게 할 일이나 낙심케 하는 일도 있을 거예요.
그중에서 좋은 것을 찾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감사할 일, 기뻐할 일을 찾는 것은
저절로 되지 않죠.
우리의 결단이 필요하고,
우리의 열정이 필요한 일입니다.
영적인 싸움이 여기서 일어납니다.
걱정도 시작은 작은 것에서 출발해요.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일도 사실 사소하게 시작되죠.
그것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내가 ‘굳이’ 그 사소한 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어떻게 보내기 원하시나요?
답은 정해져 있나요?
그렇다면 그것을 ‘굳이’ 찾으시고 선택하세요.
내가 찾은 것이 나의 하루를 덮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티샤베아브라는,
우리로 말하면 경술국치일 같은 날이 있습니다.
이 날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날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두 번 파괴되었는데,
각각 바빌로니아와 로마에 의한 파괴였지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파괴된 날이 같습니다.
그 날이 티샤베아브죠.
이스라엘은 이 날을 아주 슬프게 지냅니다.
이전 일주일간은 금식을 하죠.
우리가 잘 아는 통곡의 벽이 있지요?
그날에 이곳을 찾아 벽을 만지며 기도를 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이와 같은 절기들이 많아요.
대속죄일이 그렇고,
초막절도 그렇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때를 기억하며,
실제로 초막을 짓고 며칠을 지내기도 합니다.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이것을 배우죠.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의 교육은 유명합니다.
특별히 교육열이 높은 우리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죠.
유대인의 지혜와 부는
그들만의 독특한 교육법에서 나왔다고 믿기 때문이죠.
실제 그들의 가정교육은 특별합니다.
세세한 규칙과 규율은
어려서부터 습관을 만드는데 일조를 하죠.

그러나 유대 교육의 핵심이
결핍에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드뭅니다.
많은 이들이 풍요로운 교육을 원하지만
유대인들은 부족함을 교육의 가치로 여깁니다.
사람은 결핍을 알 때 비로소 철이 듭니다.
꿈은 아직 가지지 못했기에 가능한 것이고,
열정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발동을 하죠.

찾지 않는 사람은 얻지 못합니다.
찾는 사람의 기초는 결핍입니다.
그래서 나를 보다 나은 사람으로 이끄는 힘은,
풍요가 아니라 결핍입니다.

참 신기하죠?
시간이 많이 남을 때는 글도 잘 쓰이지 않습니다.
시간에 쫓기고 마음의 갈망이 충만해지는 그때,
비로소 강한 집중력이 생겨요.
대부분 다 모자랄 때고,
대부분 다 부족할 때 오히려 더 큰 힘이 발휘되죠.

오늘 본문에서 저는
한나의 한 행동에 주목합니다.
브닌나의 갑질은 관심 밖입니다.
한나의 눈물도, 금식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다만 제 눈을 사로잡는 것은,
그녀가 주님의 집으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자주, 얼마나 열심 인지도 몰라요.
중요한 점은,
그녀의 결핍이 그녀를 기도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고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힘들게 광야를 걸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도 않아요.
고행이 삶의 지혜도 아닙니다.
되도록이면 풍요롭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제게 관심사는 고난도 풍요도 아닙니다.
‘무엇이 나를 주님과 가까이하게 하느냐?’ 일뿐이에요.

나를 주님의 집으로 이끄는 것,
나를 주님과 가까이하게 만드는 것,
나를 그분의 말씀 안에 거하게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것이 감사한 일이고, 복된 일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이니, 
내가 주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주님께서 이루신 모든 일들을 전파하렵니다.
시편 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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