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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사무엘서묵상일기 02 - 사람에게는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분량이 있습니다.


삼상 1:3~5
엘가나는 매년 한 번씩 자기가 사는 성읍에서 실로로 올라가서, 만군의 주님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다. 그곳에는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주님의 제사장으로 있었다. 엘가나는 제사를 드리고 나서는, 늘 아내 브닌나와 그가 낳은 모든 아들딸에게 제물을 각각 한몫씩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두 몫을 주었다. 비록 주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아 놓으셨지만,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낮과 밤의 온도 차이가 심하지만
그래도 맑은 가을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우울한 나날이지만
그래도 미세먼지 하나 없는 화창한 하늘이고요.

어제 출근길에 하늘을 보았습니다. 
북적이고 혼잡한 도로 위로
뭉게구름 피어오른 맑은 하늘은
너무 평온해 보이더라고요.
번갈아 하늘과 도로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어요.
그리고는,
나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 따라
내 마음도 달라짐을 느낍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겠죠?
내가 북적이는 도로 위를 보듯 하면 말이죠.
그러나 그 위에는 또 다른 풍경이 있습니다.
맑고 푸른, 그리고 드넓은 풍경,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지러운 세상 중에”

찬송가의 가사처럼 
우리의 시선을 바꾸면 오늘도 바뀔지 모르겠어요.
주위를 둘러보면 쳇바퀴 같은 하루이지만
믿음의 눈을 들면 보이는 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그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빕니다.


아마도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했던 것 같아요.
그 사랑이 애정이었는지,
혹은 동정이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분명 한나에게 깊은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나에게는 있어야 할 것이 없었거든요.
한마디로 부족한,
혹은 가난한 이들처럼,
뭔가 결핍된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이죠.

제가 좀 꼬였나요?
엘가나의 한나에 대한 인식이
제게는 그리 달가워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엘가나는 
한나가 자식이 없어 고민하는 것을 알았을 거예요.
그래서 브닌나의 자식을 대할 때마다
한나가 신경 쓰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처럼
브닌나의 자식에게 주는 것만큼,
아니 그 갑절로 한나에게도 주었던 것 같아요.
마치 자식이 있는 것처럼…

이는 엘가나 또한 자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자식 없는 한나를,
마치 부족한 존재로 인식했다는 것이죠.
그런 인식 아래에서는 
그것이 사랑이라기보다 동정에 가까워집니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 한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을지도 몰라요.

엘가나의 사랑을 폄훼할 마음은 없지만
왠지 저는 그런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사랑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오히려 섣부른 동정이나 이해가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죠.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듯하지만
이미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닌 상태로,
나는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이미 그 마음에는 문제의식이 존재하는 상태로
누군가를 대한다면,
그것이 이중적인 태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래저래 한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마음은,
남편 엘가나에게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아무리 남편이 마음을 써 주어도,
제 아무리 타인이 괜찮다고 말해도,
제 아무리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시되지 않아도,
그래도 그 마음에 채울 수 없는 분량이 우리에게 있어요.
사람의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
그 어떤 것으로 가려지지 않는 분량,
우리가 창조될 때 만들어진,
인간만이 가진 마음의 그릇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기로 채워지는
우리의 영성이죠.
사람이 채울 수 없는
세상이 줄 수도 없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의 축복,
주님의 위로와 섭리로 채워지는 분량,
어쩌면 우리는 그 분량을 위해
오늘 주님께 말을 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어요.
하나님 형상을 닮은 우리는,
그분의 권세 또한 닮아,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재물이나 명성으로도,
재능이나 권력으로도,
심지어 우리가 행하는 사랑이나 긍휼,
선한 행동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주님의 생기의 그릇.

그래서 우리는 매일 묵상을 하고,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친구 삼아 삽니다.
그분이 채우실 분량이 있기 때문이죠.
이 채우심 없이는 우리에게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오늘 구합니다.
우리를 채우시고 만족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이
우리에게 임하길 원합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빈자리가
주님의 사랑으로 채워지는 축복이 충만하기를 원해요.
주님을 친구 삼아 그 말씀을 나누는
오늘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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