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하는말씀/신명기묵상

신명기묵상87- 어떤 반석이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신명기 32:36-52 .

저는 대학생 때 예수를 만났습니다.
이미 여러분들에게 그 경험을 이야기한 적 있는데요.
보통, 사람들이 신앙적 체험을 하듯 저도 예수를 만나는 신비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다른 것은,
어떤 환상적 체험도, 환청을 들을 것도 아니었어요.
무슨 불같은 뜨거움도, 휘몰아치는 감정도 없었습니다.
그 흔한 방언조차도 제겐 주어지지 않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험이 신비했던 것은,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공에 대한 욕구가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고, 더 많이 갖고 싶죠.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고,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저는 성공이라고 생각했더랬죠.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하나님은 제게 성공에 대한 다른 생각을 주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성공에 대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죠.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처음으로 제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가는 것도 성공일 수 있겠구나”
“많이 얻는 것이 아니라 많이 버리는 것도 성공일 수 있겠구나”

왜 그전에는 몰랐을까요?
왜 높은 곳만, 많이 갖는 것만, 강한 힘만 오직 성공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왜 그렇게 가지려고, 얻으려고, 뺏으려고 아등바등했을까요?
아무도 가지 않는 좁은 길과 좁은 문으로 가라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왜 나는 마치 모든 사람이 걷는 큰길처럼 그 성공에 대한 꿈을 가지며 살았을까요?
왜 한 번도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도 성공이라는 생각을 못했을까요?
왜 한 번도 많은 것이 아니라 적은 것도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을까요?
제게는 이것이 인생의 가장 큰 신비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심을 했죠.
“나에게 주어진 삶을 2,000년 전 예수님처럼 살고 싶다.”고요.

하늘에서 땅으로,
창조자에서 희생자로,
보좌에서 십자가로,
주인에서 종으로,
그런 삶을 살았던, 그래서 인간적으로는 실패의 삶을 살았던
그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어쩜 가장 위대한 성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추구하고 믿는 반석이 있지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
모든 행동과 방향의 기초가 되는 삶의 이정표들이 있습니다.
어떤 행동을 취하든, 어떤 모습으로 살든 우리의 삶은 이 반석에 기초하죠.
우리의 겉모습이 선이든 악이든,
우리의 걷는 길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품고, 디디고 있는 반석이죠.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어 고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모세를 원망하고 다투며,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물을 내게 하시는데요.
그때, 모세는 손에 든 지팡이로 반석을 내리칩니다.
거기서 물이 나와 모든 이들의 목을 축이죠.
그것을 므리바 사건이라고 합니다.
이때, 모세가 쳐서 산산조각을 낸 것은 반석입니다.
‘내려치다’는 뜻의 히브리말 [나카]는 ‘살해하다, 죽이다’는 뜻을 가진 단어예요.

광야는 주님이 일하시는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만 자신의 뜻에 벗어나도 하나님을 원망하죠.
조금도 주님께 나를 맡길 뜻이 없습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을 기다리지 못하죠.
왜냐하면 나의 반석이 나를 위한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은 도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우리가 도구죠.
나의 역사(history)에서 보면, 하나님은 나를 위해 존재하고,
주님의 역사(history)에서 보면, 우리가 주님을 위해 존재하죠.
어떤 반석이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어떤 기초 위에 서느냐에 따라 주객이 바뀌죠.

우물가의 여인 이야기는 잘 아는 말씀입니다.
거기서도 물이 이야기의 중심이죠.
그때, 예수께서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에 대한 말씀을 합니다.
그 여인이 믿고 따르고 서 있는 그 반석을 깨고,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과 가치관의 반석 위에 선다면 말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서 있는 반석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초로 세운 반석은 어떤 것인가요?
나의 목마름을 채우는 것입니까?
아니면 주님의 생수입니까?
오늘도 우리는 이 결정들 앞에서 하루를 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사는 의미는 무엇인가?
내가 추구하는 성공은 무엇인가?
내가 존재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오늘도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주님의 마음과 합한 것이기를 기도합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