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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신명기묵상

신명기묵상85- 아버지에게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신명기 32:1-18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여기시는지에 대해 2가지 형태로 설명하는데요.
그 중심 구절은 10절과 11절입니다.

먼저 ‘당신의 눈동자처럼 지키신다’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시편 17에도 등장하는데요.
시 17:8, 주님의 눈동자처럼 나를 지켜 주시고..

눈동자라는 표현을 기능적인 것으로 해석한다면, 한시도 눈을 떼지 않으신다는 의미죠.
이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나를 살피신다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다른 의미로, 눈동자를 가치적인 범위에서 해석한다면,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가 되죠.
마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우리 속담과 같은 말입니다.
주로 부모가 자식을 바라볼 때 쓰는 말이죠.
그만큼 소중한 존재를 가르칠 때 쓰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독수리 날개 위에 업어 나르듯’입니다.
독수리에 대한 의미는 조금 설명이 필요합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낳아 둥지에서 키우는 것은 여느 새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만 그 새끼들을 훈련시키는 방법은 사뭇 다르다고 해요.
일정한 기간이 흘러 새끼들이 어느덧 날갯짓을 해야 할 시간이 되면 어미 독수리는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고 합니다.
본문의 말처럼 새끼들의 보금자리를 뒤흔드는 것이죠.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는 죽기 살기로 날갯짓을 해야만 하겠죠.
이를 지켜보는 어미는 사투를 벌이는 새끼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큰 날개를 펴 새끼를 구한다고 합니다.
그리곤 다시 둥지에 올려다 놓고 둥지를 흔들어 떨어뜨리는 것을 반복한다죠.
그렇게 새끼는 날갯짓을 배우고, 그렇게 창공의 제왕으로 자란다고 하죠.

말씀을 공부하면서 이전에 독수리의 새끼 훈련법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때 저의 온몸에 전율이 흘렀던 기억이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전율이었어요.
아마 참새도 자녀를 그렇게 기르고 싶을지 몰라요.
그렇게 기른다면 참새 새끼도 강한 날개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러나 참새가 그렇게 자녀를 키우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어미가 둥지를 흔들어 새끼를 떨어뜨릴 수는 있을 거예요.
문제는 떨어지는 새끼의 마지막 순간에 구할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이 사실 앞에서 저는 믿음을 떠올렸어요.
어쩌면 믿음은 편안한 보금자리에서가 아니라 불안과 공포, 두려움과 괴로움이 넘치는 그 한없이 떨어지는 그 순간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고요.

오늘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본문에 적혀 있습니다.
지금까지 신명기를 통해 정말 여러 이야기가 전해졌죠.
수없이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내가 한 일을 기억하라’
‘나를 떠나지 말라’
‘나 없는 삶은 죽은 것과도 같다’
‘축복이 없는 자리는 저주가 머문다’

때론 어르고 달래며, 때론 겁박에 가까운 자극을 끊임없이 주셨지만
어쩌면 정작 보여주고 싶으신 것은 이 말씀이었는지도 몰라요.
그렇게 엄격하고 무서웠던 아버지,
말하실 때마다 상처를 던지고, 내가 하는 일마다 불호령이었던 아버지,
그래서 나를 미워한다고, 나를 못 믿는다고, 나를 버렸다고 여겼던 그 아버지가,
정작 그렇게 하셨던 이유,
바로 너무 소중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존재여서,
늘 지켜보고 있어서,
조금 더 강하고, 조금 더 아름답고, 조금 더 사람답게 살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는 것이 믿음이라고요.

육신의 부모님은 나를 떠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오늘 우리는 주님을 잃고 그 사실을 알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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