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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신명기묵상

신명기묵상30 -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신명기 8:11-20

어제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쉽고 또 아쉬운 밤이었습니다.
북미 정상에게 나라의 중대한 운명을 맡기고
지켜봐야 하는 아픔이 더욱 큰 밤이었습니다.

많은 다른 해석들을 가지고 설왕설래하겠지만
저는 어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수많은 나라들 가운데 하나로 한반도를 바라보는 미국과,
‘자신’의 운명을 걸고 ‘자신’의 나라를 바라보는 북한과는
처음부터 협상이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요.

진정성이라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못할 때 나옵니다.
더 이상 나의 힘으로는 할 수 없을 때 말이죠.
다시 말하면 ‘가난할 때’입니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난한 자들의 것이라고까지 하시죠.
그 가난은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을 때를 의미합니다.

중국에서 가난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져 내일을 장담할 수 없을 때,
절로 기도가 나왔습니다.
개척을 하고도 가난을 경험한 적이 여러 번입니다.
내 생각, 내 머리, 내 경험으로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마치 외로운 섬에 떨어져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처절한 기도가 터져 나왔습니다.

가난은 진정성입니다.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을 때,
어디에도 비빌 언덕이 없을 때,
조금의 가능성마저 사라져 버린 그때,
그때 비로소 나의 진정성이 드러납니다.
그때 비로소 주님을 찾게 되죠.

죄송한 이야기지만
가난해지지 않고는 결코 주님을 찾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가난해지지 않고는 결코 진정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죠.

하나님은 연이어서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억할 때가 언제인지 아시나요?
저는 이상하게도 스스로 답을 내지 못할 때,
아버지가 생각이 납니다.
아버지가 계셨다면 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 주셨을까?
내 마음이 연약해지고, 가난할 때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누군가가 생각날 때는 내가 가난할 때죠.
바쁘고, 할 일 많고, 채움이 있을 때는 결코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런 때도 생각난다면 그것은 그저 동정일 뿐이죠.
생각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생각이겠죠.
그러나 가난한 그때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생각이 납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진정성을 갖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당신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가난해지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가난해지는 것, 겸손해지는 것, 낮아지는 것,
모두 다 같은 말입니다.
마음이 가난하지 않고는 겸손할 수 없고,
겸손하지 않고는 낮아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생 텍쥐 베리의 유명한 소설, 어린 왕자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우리 속담에도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을 모른다”
이 속담을 사용하는 때는 주로,
자신의 옛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고,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이들을 업신여기고, 조롱하는 이들을 향해하는 말이죠.
오늘 본문에서는 이를 한 단어로 정의합니다.
“교만”이라고요.

진정성의 뿌리는 가난함입니다.
가난함의 줄기는 겸손이고요.
겸손의 열매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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