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치관이 변해서 어떤 땅이어도 젓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 수 있는 거듭남이 가나안입니다

2018. 11. 20. 09:32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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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7:1-11 나의 가치관이 변해서 어떤 땅이어도 젓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 수 있는 거듭남이 가나안입니다.

어제 수요영성예배에서
옛사람과 새사람에 대한 말씀을 나눴습니다.
옛사람과 새사람의 구분은
단순히 시간적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준이 존재하죠.
바울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때와
그리스도를 안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 것처럼 말입니다.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변하는 것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하죠.
이는 지구중심의 천문학이 진리처럼 여겨지던 시절에,
태양 중심의 천문학을 입증한
코페르니쿠스를 빗대어 한 말이죠.

바울의 변화 또한
이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도 같습니다.
자신이 알았던 지식과 믿었던 가치관에
대 변환이 있었던 것이죠.
우리는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표현하죠.

오늘 본문에는 슬라브핫의 딸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슬라브핫은 딸들만 다섯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의 전통에 따르면 상속은
아들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의 분배 또한 아들에게 주어지죠.
이는 슬라브핫 딸들에게는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이에 슬라브핫의 딸들은 모세 앞에 가서 상소를 하죠.
딸들인 자신들에게도
기업을 분배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이죠.
그런데 이 상소가 받아들여집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단순해 보이는 이 사건은
당시에는 엄청난 파장이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우리에게 지금 너무도 당연하죠.
단순히 그런 주장을 왜 이제야 했을까 싶지만
당시 코페르니쿠스는
목숨을 걸고 그 주장을 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니까요.

민수기는 크게 2부분으로 나뉩니다.
1~25장까지는 광야 1세대에 대한 이야기이고요.
26~36장까지는 광야 2세대에 대한 이야기죠.
그래서 26장은 광야 2세대의 출발을 알리는 장입니다.
여기서 슬라브핫 딸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다시 언급이 되죠.
물론 민수기 마지막장에서도 이 사건은 다시 나옵니다.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었던 것이죠.

딸들이 기업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주제는 아닙니다.
가만히 있지 않고 자신들의 처지를
능동적으로 알렸다는 것이 주제도 아니에요.
이 사건의 주제는
이전의 가치관을 허물었다는 것이 주제입니다.

새로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그곳이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이어서가 아닙니다.
나의 가치관이 변해서
어떤 땅이어도 젓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 수 있는 거듭남이 가나안이기 때문이죠.

남자 중심이, 남자나 여자나, 아이들이나
모든 생명 중심으로 변합니다.
나 중심이 타자 중심으로 변하고요.
나를 위한 삶이 남을 위한 삶,
나만 사랑받고 은혜 받으면 되는 삶이
남을 사랑하고, 은혜를 나누는 삶으로,
이것이 가나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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