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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민수기묵상

여러분의 믿음은 몸으로 체화된 믿음이길 빕니다

민수기 29:12-40 여러분의 믿음은 몸으로 체화된 믿음이길 빕니다.

오늘 본문에 제시된 절기는 초막절입니다.
7일 동안 진행되는 이 절기에 드려지는 제물의 양이 방대합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절기라는 뜻이겠죠.

‘초막’이라는 말은 작은 초가집을 의미하죠.
초막절을 영어로는 feast of tabernacle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천막을 지는 날’이라는 뜻이죠.
그래서 장막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초막절은 유월절, 칠칠절과 함께 유대인의 3대 절기에 해당합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초막절이 되면 집 근처에 작은 집을 짓습니다.
공터가 부족한 아파트 주민들은 심지어 베란다에 짓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7일 동안 지내죠.
이는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지냈던 일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잠깐이라도
예전 어려웠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절, 자신들의 길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절기에는 기억과 기념이 묻어있다고 말씀드렸죠?
그것을 전제로 그 절기들은 한 가지 특징을 지닙니다.
그것은 생각만으로 기억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고백했었죠?
어쩌면 하나님이 제정하신 절기들에는
몸이 기억하는 특징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각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습니다.
자위라고나 할까요?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며 신앙 생활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믿고 싶은 것처럼,
마치 스스로 교인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처럼,
생각으로는 주님의 말씀과 가치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의 몸에는 그 말씀과 가치를 새기려 하지 않습니다.
마치 영적인 것은 관념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죠.
실제의 삶에는 영적인 것보다 육적인 것이 훨씬 가치 있다고 여깁니다.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은 돈이지 사랑이 아닌거죠.
사랑은 다만 머리에만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나는 사랑을 하는 사람처럼 여기죠.
그래서 교회에서는 너나없이 믿음이 출중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믿음과 사랑이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해 보았으나 몸으로는 해 보지 못해서 그렇죠.
어쩌면 우리는 이런 교조주의에 빠져 지금 신앙 생활하는지도 몰라요.

기억은 영적으로도, 몸으로도 다 새겨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기자를 통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보아라, 예루살렘아, 내가 네 이름을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네 성벽을 늘 지켜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 또한,
그분의 믿음과 신앙, 그분의 사역이 몸에 체화된 의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디까지일까요?
혹시 생각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몸에 체화되어 우리의 호흡과 함께하고 있을까요?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몸이 기억하는 믿음인가요?
우리의 신앙은,
우리의 철학은,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생각뿐만 아니라 몸에서 향기가 납니까?

영성이란, 영과 혼과 육에서 함께 작용하는 것입니다.
영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은 그의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지고,
그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은 삶이 달라지죠.
여러분의 믿음은 몸으로 체화된 믿음이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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