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223 - 방해는 늘 성실합니다.
2026. 6. 26. 05:0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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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7:13~15 데살로니가의 유대 사람들은, 바울이 베뢰아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알고서, 거기에도 가서, 무리를 선동하여 소동을 벌였다. 그 때에 신도들이 곧바로 바울을 바닷가로 떠나보냈다. 그러나 실라와 디모데는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바울을 안내하는 사람들이 바울을 아테네까지 인도하였다. 그들은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가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그에게로 와야 한다는 지시를 받아 가지고, 베뢰아로 떠나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금요일 아침입니다. 한 주간도 삶의 자리에서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 보이는 자리에서도 애쓰셨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도 성실하게 버티셨을 것입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몫을 감당해 온 여러분을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주님께서 지친 몸에는 쉼을 주시고, 흔들린 마음에는 평안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베뢰아에서 일어난 일을 들려줍니다. 바울이 베뢰아에서 말씀을 전하자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들었나 봅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겠죠. 그들은 베뢰아까지 찾아왔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까지는 대략 70~8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죠. 오늘날 차로 가도 한 시간이 넘는 거리입니다. 그 당시 걸어서 이동했다면 하룻길이었을만큼 결코 가벼운 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먼 길을 와서 무리를 선동하고 소동을 일으켰죠. 참 집요하고 징합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도 유대 사람들은 경건한 귀부인들과 도시의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했습니다. 이고니온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선동했고요. 루스드라에서는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사람들이 무리를 설득하여 바울을 돌로 치게 했습니다. 빌립보에서도 거짓 선동으로, 바울과 실라를 매질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생명이 일어났지만, 동시에 방해도 늘 따랐죠.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방해는 늘 성실하다는 거죠. 악은 게으르지 않습니다. 반대는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방해는 한 번 막히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찾아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멈추지 않고 베뢰아까지 따라옵니다. 우리가 흔들릴 만한 이유를 계속 가져옵니다. 피곤함을 가져오고, 두려움을 가져오고, 오해를 가져오고, 낙심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이런 생각을 심습니다.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이거 아무 소용없는 것 아니야?"
사탄의 힘이 하나님보다 강해서 우리가 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악이 진리보다 커서 우리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예요. 문제는 악이 강해서가 아니라, 방해가 끈질기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끈질김에 지칠 때가 많다는 데 있어요. 베드로전서는 "여러분의 원수 악마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닌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두려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방해는 쉬지 않으니, 우리도 깨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상에서도 그렇습니다.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운동이 좋은 것도 압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말씀을 가까이해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문제는,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방해가 성실하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책을 펼치려 하면 피곤합니다. 운동하려 하면 날씨가 걸립니다. 기도하려 하면 할 일이 생각납니다. 말씀을 읽으려 하면 휴대전화 알림이 울립니다. 방해는 거창하게 오지 않습니다. 아주 현실적으로 옵니다. 작고 사소한 이유들을 매일 성실하게 가져오죠.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방해를 이겨야 할까요? 방해와 정면으로 싸워 이기면 될까요? 물론 분별하고 거절해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 싸움은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는 일이 아닙니다. 사탄을 이기는 길은 사탄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야고보 기자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방해를 이기는 길도 비슷합니다. 방해를 계속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선한 일에 성실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우리는 이 말씀을 기쁨, 기도, 감사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깊은 힘은 '성실함'에 있습니다. 한 번 기뻐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끔 기도하라는 말도 아니고,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항상, 끊임없이, 모든 일에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기쁨에도 성실해야 합니다. 기도에도 성실해야 합니다. 감사에도 성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방해에 지는 이유는 기쁨이 없어서만은 아닙니다. 기도할 줄 몰라서만도 아니고요. 감사할 일이 전혀 없어서도 아닙니다. 문제는 성실함입니다. 기쁨을 지키는 성실함이 약해질 때 마음이 무너집니다. 기도를 이어 가는 성실함이 멈출 때 영혼이 흐려집니다. 감사를 반복하는 성실함이 사라질 때 원망이 자리를 잡습니다. 성실은 신앙의 호흡과 같습니다. 호흡이 하루에 한 번으로 충분하지 않듯이, 믿음의 성실도 가끔으로는 깊어지기 어렵습니다.
방해가 없기를 기다리지 마십시오. 방해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 시작하겠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습니다. 방해는 늘 있습니다. 피곤함도 있고, 걱정도 있고, 마음을 흔드는 말도 있고, 예기치 않은 문제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방해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다. 그 방해 속에서도 내가 무엇에 성실할 것인가입니다. 한낱 방해도 저렇게 성실한데,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귀한 우리가 성실에서 질 수는 없습니다.
오늘도 기쁨에 성실하십시오.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감사를 반복하십시오. 예배와 말씀에 성실하십시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지켜야 할 마음을 지키십시오. 우리는 방해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성실이 멈출 때 무너집니다. 그러나 주님께 가까이 가는 성실함을 붙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방해는 늘 성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 앞에서 성실합시다. 오늘도 그 성실함으로 한 주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복된 하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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