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217 -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사세요.
2026. 6. 19. 05:0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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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35~40 날이 새니, 치안관들은 부하들을 보내어, 그 두 사람을 놓아주라고 명령하였다. 그래서 간수는 이 말을 바울에게 전하였다. "치안관들이 사도님들을 놓아주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오셔서, 평안히 가십시오." 바울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치안관들이 로마 시민인 우리를 유죄 판결도 내리지 않은 채 공공연히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다가, 이제 와서, 슬그머니 우리를 내놓겠다는 겁니까? 안됩니다. 그들이 직접 와서 우리를 석방해야 합니다." 관리들이 이 말을 치안관들에게 전하니, 그들은 바울과 실라가 로마 시민이라는 말을 듣고서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치안관들은 가서 그들을 위로하고, 데리고 나가서, 그 도시에서 떠나 달라고 청하였다. 두 사람은 감옥에서 나와서 루디아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신도들을 만나 그들을 격려하고 떠났다.
좋은 아침입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고 주일을 준비하는 금요일 아침입니다. 이번 주도 각자의 자리에서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 금요일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다가올 예배를 준비하기에 좋은 날입니다. 마음에 쌓인 피로와 염려를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일의 은혜를 기대하며 하루를 열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붙드시고, 지친 자리마다 새 힘을 더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풀려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조금 이상합니다. 관리들은 부하들을 보내어 말합니다.
"그 사람들을 놓아주어라."
조용히 풀어 주겠다는 뜻입니다. 어제 그렇게 때리고 감옥에 가두어 놓고, 이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거절합니다.
"로마 시민인 우리를 재판도 하지 않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감옥에 가두어 놓고, 이제 와서 몰래 내보내려 합니까?"
바울은 자신들이 당한 일이 부당한 폭력이었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이 말은 단순한 분노가 아닙니다. 자존심을 세우려는 말도 아니예요. 복수하려는 말은 더더욱 아니죠. 바울은 자기 억울함을 공동체를 지키는 언어로 바꾸고 있습니다. 빌립보에는 이제 막 믿음의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루디아와 그 집이 있었고, 간수와 그 집이 있었습니다. 이제 막 복음을 받아들인 형제자매들이 있었죠. 만약 바울과 실라가 범죄자처럼 조용히 쫓겨난다면, 남겨진 사람들은 계속 의심과 낙인 속에 살아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저 사람들이 믿는 복음은 위험한 것 아냐?"
"저들은 죄수들을 따르던 무리 맞지"
이런 말이 공동체를 짓누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바울은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복수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부당함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분노를 터뜨리는 방식이 아니라, 진실을 바로 세우는 방식으로 말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상처 입은 사람은 여러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침묵할 수도 있고, 분노에 갇힐 수도 있습니다.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다시는 누구도 믿지 않으려 할 수도 있죠. 그러나 바울은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자기 상처를, 공동체를 보호하는 언어로 바꾸었습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는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픔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죠. 상처 입은 치유자는 자기 아픔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아보는 사람입니다. 자기 상처를 무기로 쓰지 않고, 누군가를 지키고 살리는 통로로 드리는 사람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그의 책, [상처 입은 치유자]에서 참된 돌봄은 완벽한 사람이 위에서 내려다보며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통해 다른 사람의 아픔 곁에 설 때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치유자는 상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하나님께 드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물론 상처가 선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폭력은 폭력입니다. 부당함을 모른척 해서도 안 되고, 아픔을 너무 빨리 은혜라고 포장해서도 안 됩니다. 특히 상처 입은 사람에게 '그냥 참으라'고 말하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당한 상처가 상처로만 끝나지 않게 하십니다. 억울함이 우리 영혼의 마지막 이름이 되지 않게 하십니다. 그 상처를 통해 더 깊은 눈을 주시고, 더 따뜻한 손을 주시고, 더 넓은 마음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본문의 마지막 장면이 참 아름답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나온 뒤 곧장 떠나지 않았습니다. 루디아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들을 만나 위로한 뒤 떠났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공동체를 위로합니다. 매 맞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세웁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남겨질 사람들의 마음을 살핍니다. 이것이 복음의 신비입니다.
우리도 상처를 입습니다. 선한 마음으로 했는데 오해받을 때가 있고요. 사랑하려 했는데 상처받을 때가 있습니다. 정직하려 했는데 손해 볼 때가 있고, 열심히 섬겼는데 인정은커녕 비난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이 닫히기 쉽습니다.
"다시는 안 해."
"이제는 누구도 믿지 않아."
"나만 손해 봤어."
이런 말이 절로 올라옵니다.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상처는 실제로 아픕니다.
그러나 그 상처가 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이 되게 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께 드려진 상처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언어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아파 봤기 때문에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울어 봤기 때문에 들리는 울음이 있습니다. 내가 억울해 봤기 때문에 억울한 사람 곁에 설 수 있습니다. 내가 넘어져 봤기 때문에 넘어진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상처가 치유의 통로가 되는 길입니다.
예수님도 상처 입은 치유자이십니다. 이사야는 '그가 상함을 받은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전서는 '그가 매를 맞음으로 여러분이 나음을 얻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주님의 상처는 세상을 향한 저주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길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상처를 감추지 않으셨고, 상처로 사람을 위협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 상처로 우리를 품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상처도 그렇게 주님께 드려지기를 바랍니다. 원망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를 찌르는 말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신 누군가를 알아보는 눈이 되고, 누군가를 세우는 말이 되고, 누군가를 다시 일으키는 손이 되기를 바랍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사십시오. 하나님께 드려진 상처는 더 이상 상처로만 남지 않습니다. 그 상처는 누군가의 생명을 붙드는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그 은혜 안에서 한 주를 잘 마무리하고, 주일의 예배를 기쁨으로 준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wF-0SHwWy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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