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214 - 사람들은 우리가 믿는 교리를 보기 전에,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를 봅니다.

2026. 6. 16.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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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29~30   간수는 등불을 달라고 해서, 들고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그들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물었다. "두 분 사도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한동안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더니 이제는 무더위가 성큼 다가온 것 같습니다. 낮에는 햇살이 제법 뜨겁고, 몸도 쉽게 지칩니다. 이럴 때일수록 물도 자주 드시고, 마음도 너무 몰아붙이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더위가 우리 몸을 지치게 해도,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우리 마음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건강 잘 챙기시고, 평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간수는 등불을 들고 뛰어 들어옵니다. 그리고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립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바울과 실라를 감시해야 할 죄수로 보았습니다. 그는 명령하는 사람이었고, 바울과 실라는 묶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지키는 사람이었고, 바울과 실라는 지켜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관계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간수는 그들 앞에 엎드려 묻습니다. 

"두 분 사도님,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무엇이 간수를 이렇게 바꾸었을까요? 물론 지진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감옥 문이 열린 것도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간수가 정말 본 것은 기적보다 더 이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도망갈 수 있는데 도망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억울하게 맞고 갇혔는데도 찬송하던 사람들이죠. 자기들을 가둔 간수의 생명을 먼저 걱정한 사람들이었고요. 자유가 주어졌는데도 자기만 살려고 뛰쳐나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지진은 간수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의 삶은 간수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기적은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은 사람을 이렇게 질문하게 만듭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믿기에 이렇게 사는가!"
"어떻게 이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가!"
"어떻게 자기들을 가둔 나를 살리려 하는가!"

이 질문이 간수의 마음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구원의 길을 묻게 되었죠.

사람들은 우리가 믿는 교리를 보기 전에,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를 봅니다. 우리가 무엇을 주장하는지보다, 고난을 어떻게 대하는지 봅니다. 우리가 어떤 교단에 속했는지보다,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봅니다. 우리가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아는지보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어떤 사람이 되는지 봅니다. 우리가 찬양을 얼마나 잘하는지보다, 자유가 주어졌을 때 그 자유를 어떻게 쓰는지 봅니다.

세상은 우리의 신앙고백을 듣기 전에 우리의 표정을 봅니다. 우리의 교리를 배우기 전에 우리의 태도를 봅니다. 우리의 예배를 보기 전에 우리의 일상을 봅니다. 누군가 나를 오해할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내가 손해 볼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 고난이 올 때 냉소하는가, 기도하는가! 자유가 생길 때 욕망을 따르는가, 사랑을 선택하는가! 그 장면에서 우리의 믿음이 드러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삶이 복음 그 자체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 복음이 실제라는 것을 보여 주는 증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여러분은 우리의 편지'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읽혀지는 편지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처음 읽는 성경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처음 만나는 교회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처음 보는 복음의 얼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삶은 가볍지 않습니다. 말보다 먼저 삶이 갑니다. 설명보다 먼저 태도가 보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삶이 거칠면 사람은 복음을 듣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바른 교리를 말해도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그 말은 힘을 잃습니다. 반대로 말이 조금 서툴러도 삶에 사랑이 있으면 사람은 묻기 시작합니다.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살게 할까?"

우리의 삶이 먼저 질문을 만들 때, 우리의 말은 복음으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일상에서 이것은 아주 현실적입니다. 직장에서 억울한 말을 들었을 때 즉시 맞받아치지 않고 사실을 차분히 말하는 사람, 가정에서 자기 기분대로 폭발하지 않고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는 사람, 손해를 보았지만 상대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갚지 않는 사람, 내 편이 아닌 사람에게도 최소한의 존중을 잃지 않는 사람, 이런 삶은 조용하지만 강한 증언입니다.

물론 완벽하게 살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실수합니다. 말도 잘못하고, 감정에 휩쓸리고, 후회할 행동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태도입니다. 잘못했을 때 사과할 줄 아는 것, 넘어진 뒤에도 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것, 내 힘으로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 그것도 복음의 증언입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은혜로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복음을 보여 줍니다.

프란치스코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지는 말이 있습니다.

"항상 복음을 전하십시오. 필요하면 말도 사용하십시오."

정확한 출처를 따지기보다, 이 말이 주는 울림은 분명합니다. 삶이 먼저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태도가 먼저라는 뜻입니다. 말은 삶의 뒷받침을 받을 때 힘을 얻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누군가에게 질문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사람은 무엇을 믿기에 저렇게 사는가!"
"저 사람 안에는 어떤 평안이 있는가!"
"저 사람은 왜 나를 미워하지 않고 살리려 하는가!"

우리의 삶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믿는 교리를 보기 전에,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를 봅니다. 오늘도 우리의 말보다 삶이 먼저 복음을 전하는 조용한 증언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rJSoVWYp1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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