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209 - 진실은 늘 환영받지 못합니다.
2026. 6. 10. 05:0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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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19~21 그 여자의 주인들은, 자기들의 돈벌이 희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서, 광장으로 관원들에게로 끌고 갔다. 그리고 그들을 치안관들 앞에 세워 놓고서 "이 사람들은 유대 사람들인데, 우리 도시를 소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로마 시민인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도 없고 실천할 수도 없는, 부당한 풍속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새 하루를 맞습니다. 큰일을 해야만 좋은 하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하고, 내 말 한마디를 조금 더 조심하고, 내 마음을 조금 더 주님께 맡기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귀한 하루입니다. 오늘도 무리하지 마시고,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하게 걸어가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평안과 힘을 더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어제 우리는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찌르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묵상했습니다. 맞는 말이라도 어떤 영에서 나오느냐가 중요하다고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현실을 보여 줍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도, 모두가 박수쳐 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진실은 늘 환영받지 못합니다.
바울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에게서 그 영을 쫓아냈습니다. 한 사람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오랫동안 묶였던 영혼이 풀려났습니다. 자기 삶을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하던 사람이 회복의 길 앞에 섰습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기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여종의 주인들이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숨기지 않습니다. "그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들의 돈벌 희망이 사라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았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해방이 아니었습니다. 사라진 수익이었죠. 그 여종은 사람이 아니라 돈벌이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고통은 그들의 사업이었습니다. 그녀의 묶임은 그들의 이익이었죠. 그러니 그 여종이 자유로워지는 순간, 그들은 분노했던 것입니다. 누군가의 생명이 회복되었는데도, 자기 이익이 줄었다는 이유로 화를 낸 것이죠.
그런데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돈벌이가 끊겼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죠. "저 여자를 이용해서 돈을 벌었는데, 이제 못 벌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 도시를 소란하게 합니다.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아들일 수도 없고 행할 수도 없는 풍속을 전하고 있습니다."
진짜 이유는 이익이었지만, 겉으로는 질서와 전통과 로마 시민의 이름을 내세웠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지킬 때도 고상한 명분을 끌어옵니다. 내 욕심을 공동체의 질서라고 포장하기도 하고요. 내 두려움을 전통 수호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내 손해를 정의의 문제처럼 꾸미기도 하죠. 그래서 우리는 늘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분노하는 이유가 정말 진리 때문인지, 아니면 내 이익이 건드려졌기 때문인지 살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진실은 말이 아닙니다. 사건입니다. 한 여종이 더 이상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이라는 진실입니다. 그의 고통보다 주인들의 수익이 더 중요할 수 없다는 진실이고요. 생명이 이익보다 크다는 진실입니다. 바울은 그 진실을 말로만 외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붙잡히고 고소당합니다.
오늘도 비슷한 일이 많습니다. 누군가의 불안이 상품이 됩니다.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산업이 되고, 누군가의 상처가 조회수가 됩니다. 재난과 사고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되죠. 혐오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대통령이 되고, 전쟁은 그들의 상업적 이익이 됩니다. 심지어 죄책감과 공포가 종교적 통제의 도구가 되기도 하죠. 그런 구조 앞에서 "이 사람은 이용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입니다"라고 말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진실은 늘 환영받지 못합니다. 특히 그 진실이 누군가의 이익을 멈추게 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박수받기 위해 진실을 선택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진실을 선택하는 사람이죠. 물론 모든 비난이 내가 옳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때로 우리는 정말 미숙하고 거칠어서 비판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 말과 태도를 돌아보는 겸손은 늘 필요하죠. 그러나 사람을 살리는 진실을 따라 살다가 불이익을 당한다고 해서, 그 길이 틀렸다는 뜻도 아닙니다. 박수를 받지 않는다고 잘못된 길도 아니에요. 오히려 옳은 일일수록 박수보다는 비난과 시기심을 받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반응이나 방해를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진실되게 살려면 그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세상이 나를 욕하고 방해하고 불이익을 준다고 화낼 필요 없어요.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니까요.
복음은 사람을 살립니다. 그래서 사람을 이용하던 구조는 복음을 싫어합니다. 복음은 묶인 사람을 풀어 줍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묶임으로 이익을 얻던 사람은 그 자유를 미워하죠. 그래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나는 생명보다 이익을 크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누군가의 자유보다 내 편안함을 더 붙들고 있지는 않은지, 진실이 내 이익을 건드릴 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반응하는지 말입니다.
진실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진실이라서 불편해 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 그렇게 진실은 늘 환영받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진실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 진실, 그 진리의 편에 서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 서는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진실의 힘은 지치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소멸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도 사람을 살리는 진실 곁에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CSBaXJFno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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