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207 - 누군가의 아픔이 누군가의 이익이 되는 세상은 정상이 아닙니다.
2026. 6. 8. 05:0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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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16 어느 날 우리가 기도하는 곳으로 가다가, 귀신 들려 점을 치는 여종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점을 쳐서, 주인들에게 큰 돈벌이를 해주는 여자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첫 단추를 잘 매는 일이 참 중요합니다. 하루의 첫 마음이 하루의 방향을 만들고, 한 주의 첫 걸음이 우리의 삶의 태도를 만듭니다. 오늘 너무 무겁게 시작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친절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 성실한 선택 하나로 이번 한 주의 문을 잘 열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과 일터와 가정을 붙드시고, 오늘도 평안과 기쁨으로 인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한 여종이 등장합니다. 성경은 그를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점을 쳐서 자기 주인들에게 큰 돈을 벌어 주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읽을 때 쉽게 귀신 들린 사람이라는 표현에만 주목합니다. 그러나 더 깊이 보아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그는 아픈 사람이었습니다. 묶인 사람이었죠. 자기 삶을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의 아픔을 돈벌이로 삼았습니다. 그의 고통은 누군가의 이익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세상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아픔이 누군가의 이익이 되는 세상은 병든 세상입니다. 누군가의 슬픔이 상품이 되고, 누군가의 상처가 구경거리가 되고, 누군가의 약함이 조롱의 대상이 되는 세상은 하나님 나라와 거리가 멉니다. 이 여종의 주인들은 그를 한 생명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단지 돈을 벌어 주는 도구로 보았죠. 그의 영혼은 보지 않았고, 그의 쓸모만 보았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이것이 악의 시작입니다.
이런 일은 옛날에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오늘도 반복됩니다. 가난한 사람의 고통이 정치적 구호가 됩니다. 약자의 눈물이 선거의 도구가 됩니다. 누군가의 질병과 사고가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됩니다. 유명인의 무너짐은 조회수가 되고, 이웃의 불행은 술자리의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전쟁과 재난의 장면도 때로는 누군가의 콘텐츠가 됩니다. 사람의 아픔이 상품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인 미디어와 SNS는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실수는 순식간에 조롱거리로 퍼집니다. 누군가의 고백은 맥락 없이 잘려 나가 비난의 재료가 됩니다. 혐오도 돈이 됩니다. 더 자극적인 말, 더 거친 표현, 더 편을 가르는 주장이 조회수를 끌어옵니다. 사람들은 분노하고, 공유하고, 댓글을 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이익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남는 것은 상처뿐입니다. 누군가는 더 깊이 무너집니다. 누군가는 더 외로워집니다. 누군가는 다시 일어설 용기조차 잃습니다.
정치도 이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불안과 분노를 자극해서 자기 편을 만듭니다.
'저 사람들이 문제다.'
'저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힘들다.'
이런 말로 사람을 갈라놓습니다. 상업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불안을 건드립니다.
'당신은 부족하다.'
'이것이 없으면 뒤처진다.'
'지금 사지 않으면 실패한다.'
그렇게 두려움을 팔고, 결핍을 팔고, 불안을 이익으로 바꿉니다.
종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불안과 공포를 마케팅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벌받는다.'
'이 헌신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외면하신다.'
'우리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위험하다.'
이런 말은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사람을 겁주어 묶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묶인 사람을 풀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을 이용해 사람을 지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두려움에 갇힌 사람에게 평안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일은 사람을 이용하는 일입니다. 특별히 약한 사람의 아픔을 자기 이익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성경의 예언자들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억압하는 일을 강하게 꾸짖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싫어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싫어하신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예배를 드리면서도 약자를 짓밟는 마음을 싫어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아픔 위에 세워진 성공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병든 흐름을 이길 수 있을까요? 이 병든 흐름을 바꾸는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타자를 타자로 인정하는 마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타자화라는 말은 어려워 보이지만, 단순합니다. 내 욕망의 도구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내 판단의 대상으로만 삼지 않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도 사연이 있고, 눈물이 있고, 하나님이 주신 존엄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덮는다는 말은 잘못을 숨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을 다시 살릴 길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조롱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약점을 팔지 않습니다. 사랑은 아픔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함께 웁니다. 그리고 함께 웃을 날을 기다립니다. 이것이 회복되어야 할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아픔을 가볍게 말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실수를 내 우월감의 재료로 삼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흥밋거리로 소비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한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아픔 곁에 머물고, 조용히 기도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이 누군가의 이익이 되는 세상은 정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아픔이 누군가의 사랑을 깨우는 세상, 그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오늘도 그 나라를 살아내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q4ciCsW_qFY?si=EI5fOavUK6jzt6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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