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202 - 다양성이 생명력과 성장을 만듭니다.

2026. 6. 2.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반응형

사도행전 16:4~5   바울 일행은 여러 도시를 두루 다니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서 지키게 하였다. 교회들은, 그 믿음이 점점 더 튼튼해지고, 그 수가 나날이 늘어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벌써부터 여름이 성큼 다가온 듯 한낮의 열기가 제법 뜨겁습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몸도 마음도 지치기 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시원한 물 한잔 나누며 서로를 다독이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힘내세요." "수고 많으십니다." 이런 따뜻한 응원의 한마디가 서로에게 큰 활력소가 됩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영혼의 상쾌함을 잃지 않는 하루 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살다 보면 유독 선을 긋는 순간이 많습니다.

"
나는 이런 건 딱 질색이야."
"이런 부류의 사람은 나랑 안 맞아."

우리는 이런 태도를 확고한 주관이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취향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물론 취향과 기준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많아지면 문제가 됩니다. 많은 기준은 나를 지켜 주는 울타리가 아니라 나를 가두는 벽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거부감이 많을수록 삶은 좁아지죠. 싫은 것이 많고, 제한을 두는 조건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혼자만의 닫힌 회로에 갇히기 쉽습니다. 앞으로 전진하려면 무거운 짐을 벗어야 해요.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내 안의 좁은 잣대를 조금씩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 일행이 여러 도시를 다니며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을 전달하는 장면입니다. 사도행전 16장 4절의 "규례" 또는 "결정"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도그마타(δόγματα)입니다. 결정들, 법령들이라는 뜻인데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결정이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명령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묶는 도그마가 아니라, 사람을 풀어 주는 해방의 도그마였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초대교회는 아주 중요한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방인도 예수를 믿으려면 유대인이 되어야 하는가?'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

예루살렘 회의의 결론은 분명했습니다. NO!였죠.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특정 민족의 문화와 종교 관습을 모두 통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결정은 문턱을 높이는 결정이 아니라 오히려 문턱을 낮추는 결정이었습니다. "너희는 우리처럼 되어야 한다"는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너희에게도 열려 있다"는 선언이었던 것이죠. 복음은 사람을 하나의 모양으로 찍어내지 않습니다. 유대인을 유대인답게, 이방인을 이방인답게, 각 사람을 자기 자리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웁니다. 획일화가 아니라 생명이고, 강요가 아니라 은혜이며, 통제가 아니라 확장입니다.

그 결과 교회들은 믿음 안에서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걸림돌이 줄어들자 생명이 자랐습니다. 문턱이 낮아지자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한 가지 모양만 강요하지 않자 교회는 더 넓어졌습니다. 다양성이 생명력과 성장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성장은 내 안의 걸림돌이 줄어들 때 시작됩니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기도 전에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환경을 겪기도 전에 안 된다고 말하고, 미래가 오기도 전에 두려워하죠.

"저 사람은 불편해."
"저 방식은 안 맞아."
"그건 우리 스타일이 아니야."

이런 말들이 많아질수록 삶의 확장성은 줄어듭니다.

마음의 문턱이 많아지면 결국 내가 그 문턱 안에 갇힙니다. 내가 누군가를 걸러내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 미래를 걸러내고 있는 거죠.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밀어낸 사람이, 사실은 하나님이 보내신 배움의 기회였을 수도 있습니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닫아 버린 길이, 사실은 나를 더 넓게 만들 길이었을 수도 있어요.

우리 뇌는 익숙한 길을 좋아합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빨리 분류하려 합니다. 낯선 문화를 만나면 빨리 판단하려 하죠. 그래야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우리에게 한 걸음 더 묻습니다.

"네가 지금 판단한 것이 정말 진실이냐, 아니면 익숙하지 않아서 불편한 것이냐."

늘 같은 방식으로만 보고, 같은 사람만 만나고, 같은 말만 반복하면 생각의 길도 좁아집니다. 그러나 낯선 사람을 이해하려 하고, 다른 문화를 배워 보려 하고, 새로운 환경 앞에서 마음을 열 때 생각은 다시 유연해집니다.

이웃 사랑은 인맥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 사랑이 많은 줄 아는 것은 착각입니다. 친구가 적다고 사랑이 없는 것도 아니고 친구가 많다고 사랑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이웃 사랑은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 앞에 마음의 걸림돌을 먼저 세우지 않는 태도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면 지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술만으로도 부족합니다. 마음이 넓어야 합니다. 세계로 나아가는 사람은 많은 나라를 아는 사람이기 전에, 자기 안의 작은 우물을 깨는 사람입니다.

오늘 누구를 만나든 미리 걸러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환경을 만나든 먼저 닫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내가 낯설어하는 사람을 통해 나를 넓히십니다. 내가 불편해하는 환경을 통해 나를 자라게 하십니다. 다양성이 생명력과 성장을 만듭니다. 내 안의 문턱을 낮추십시오. 복음은 우리를 더 넓은 사람으로 부릅니다.

https://youtu.be/PVoahJ6olZ4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