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201 - 이기는 사람보다 길을 여는 사람이 되세요.

2026. 6. 1. 05:00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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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3   바울은 디모데가 자기와 함께 가기를 바랐다. 그래서 바울은 그 지방에 사는 유대 사람들을 생각해서,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였다. 그것은, 디모데의 아버지가 그리스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6월의 첫날입니다. 어느새 한 해의 중간으로 들어서는 문 앞에 섰습니다. 지나온 시간에는 수고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었고, 감사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걸어온 우리 자신을 따뜻하게 격려하면 좋겠습니다. “잘 버텼다. 잘 걸어왔다. 이제 또 새롭게 시작해 보자.” 이렇게 자신에게 말해 주면 좋겠습니다. 6월의 첫날,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새로운 힘을 주시고, 우리의 말과 선택을 통해 누군가에게 길을 열어 주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예루살렘 회의는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예수를 믿기 위해 유대인이 될 필요는 없다는 선언이었습니다. 할례나 율법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복음의 자유가 분명하게 확인된 것이죠.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합니다. 얼핏 보면 모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가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생각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복음의 본질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분명히 말합니다. “그 지역에 사는 유대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가 헬라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눈에는 디모데가 애매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러 갈 때마다 이 문제가 불필요한 걸림돌이 될 수 있었겠죠.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것은 패배가 아닙니다. 복음의 후퇴도, 타협도 아닙니다. 이것은 길을 여는 선택이었습니다. 바울은 충분히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할례는 필요 없다."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미 결론났다."
"내가 맞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신학적으로도 바울이 맞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이기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길을 여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바울은 자기 옳음을 증명하려 하기보다 복음이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는 길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복음 안에서 성숙한 사람은 언제나 이기려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길을 열어 주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주 이기려 합니다. 가정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일터에서도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합니다.

"내가 틀린 말 했어?"
"내 말이 맞잖아."

이렇게 말합니다. 물론 정말 내가 맞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맞는다고 해서 언제나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옳은 말을 하고도 길을 막을 때가 있습니다. 맞는 말을 하고도 사람의 마음을 닫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이겼지만 아무도 살아나지 않는 싸움이 있습니다. 논리적으로는 이겼는데 사랑의 길은 막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가 이겼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에게 길이 열렸느냐?"입니다.

물론 길을 연다는 것이 진리를 포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무 기준도 없이 양보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바울은 여전히 할례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다만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와 걸림돌을 줄였을 뿐입니다. 길을 여는 사람은 진리를 포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본질은 지키되, 방식은 사랑 안에서 조율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할례로부터, 율법주의로부터,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자유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길을 열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진짜 자유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힘만이 아닙니다. 진짜 자유는 사랑을 위해 나를 조율할 수 있는 힘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 자유가 누군가에게 길이 되고 있는가?"

내 자유가 누군가에게 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자유가 다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복음의 자유는 나를 증명하는 무기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때로 작은 것을 내려놓아야 큰 길이 열립니다. 자존심을 조금 내려놓으면 대화의 길이 열립니다. 말투를 조금 낮추면 관계의 길이 열립니다. 내 방식을 조금 조율하면 사랑의 길이 열립니다. 물론 길을 연다는 것이 언제나 나만 참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을 위해 작은 것을 내려놓는 것은 성숙입니다. 그것은 나를 잃는 일이 아니라 더 넓은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오늘 내가 이기려는 사람인지, 길을 여는 사람인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이 상대를 꺾기 위한 말인지, 길을 열기 위한 말인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내 자유가 벽이 아니라 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 말과 태도가 누군가에게 복음이 지나갈 길을 열어 주기를 바랍니다. 6월의 첫날, 이기는 사람보다 길을 여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J70-Xt2Jd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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