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219 - 당신의 진짜 주인은 누구입니까?
2026. 6. 22. 05:0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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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7:6~9 그러나 그들을 찾지 못하고, 야손과 신도 몇 사람을 시청 관원들에게 끌고 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세상을 소란하게 한 그 사람들이 여기에도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야손이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예수라는 또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거슬러 행동을 합니다." 군중과 시청 관원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였다. 그러나 시청 관원들은 야손과 그 밖의 사람들에게서 보석금을 받고 놓아주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한 주가 다시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주일의 은혜를 안고 오늘 또 하루를 새롭게 열어야 합니다. 월요일은 부담스러운 날입니다. 그러나 월요일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번 한 주도 주님이 우리의 걸음을 친히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며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작은 선택들 속에서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평안한 월요일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야손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바울과 실라를 잡으려 했는데 찾지 못하자 대신 야손의 집을 습격했습니다. 야손은 본문에서 길게 소개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어떤 지위를 가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죠.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맞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무대 위의 설교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열린 집 하나로 복음의 길에 참여한 사람은 분명하죠. 그 일로 그는 위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반대자들은 야손과 몇몇 형제들을 끌고 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발하죠.
"세상을 소란하게 한 사람들이 여기에도 왔습니다. 야손이 그들을 영접했습니다. 그들은 가이사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른 임금 곧 예수라는 이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바울 일행을 위험한 사람들로 몰아가기 위한 악의적인 고발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흥미롭습니다. 그 고발 속에 복음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마가복음 5장에 나오는 거라사 지방의 귀신 들린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을 사로잡고 있던 귀신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알아보았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라고 외쳤습니다. 데살로니가의 반대자들에게서도 비슷한 역설을 봅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감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게 참 아이러니하죠.
복음은 정말 세상을 흔듭니다. 그러나 복음이 선한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은 이미 뒤틀린 질서를 드러냅니다. 사람보다 돈이 앞서는 질서,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밟는 질서, 권력이 책임지지 않는 질서, 성공과 체면이 인간의 존엄보다 커지는 질서를 흔듭니다. 복음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어지러워진 세상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로 부르는 것입니다.
반대자들의 두 번째 고발은 더 본질적입니다. 다른 임금, 곧 예수가 있다는 말이죠. 이 말은 로마 황제의 도시였던 데살로니가에서는 무척이나 위험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로마 제국 안에서 황제는 단순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충성과 질서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고백한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말은 폭력적 반란의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충성의 방향을 바꾸는 고백이었습니다. 황제가 절대자가 아닙니다. 돈이 절대자가 아닙니다. 성공도, 권력도, 여론도 절대자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삶의 주님이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가이사가 있습니다. 돈이라는 가이사가 있고, 성공이라는 가이사가 있습니다. 인정이라는 가이사가 있고, 두려움이라는 가이사도, 자존심이라는 가이사도 있습니다. 정치적 진영이 왕처럼 우리 마음을 지배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의 결정을 좌우할 때도 있고요. 입으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 선택은 다른 왕이 내릴 때가 많습니다. 돈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인정 욕구가 시키는 대로 말하고, 두려움이 시키는 대로 피하고, 자존심이 시키는 대로 싸울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주인에게 끌려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진짜 주인은 누구입니까? 삶의 왕좌에는 누가 앉아 있습니까? 예수님은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맘몬을 섬길 것인지. 생명의 질서를 따를 것인지, 세상의 계산을 따를 것인지.
복음은 우리를 위로합니다. 그러나 위로만 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의 가짜 왕들을 흔듭니다. 복음은 평안을 줍니다. 그러나 거짓 평화 위에 세워진 삶은 흔들어 깨웁니다. 복음은 우리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우리가 계속 돈과 두려움과 자존심의 종으로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C. S. 루이스는 우리가 하나님을 삶의 한 부분에만 모셔 두려는 마음을 경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작은 방 하나만 고치러 오시는 분이 아니라, 집 전체를 새롭게 지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도 복음은 우리를 향해 묻습니다. 너의 주인은 누구냐고. 네 삶의 왕좌에는 누가 앉아 있느냐고. 야손은 큰 설교를 하지 않았지만 자기 집을 열어 예수를 주님으로 섬기는 길에 참여했습니다. 우리도 오늘 삶의 작은 자리에서 그렇게 고백하면 좋겠습니다. 돈보다 주님을, 두려움보다 주님을, 인정 욕구보다 주님을, 자존심보다 주님을 높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다시 우리의 주인이 되실 때, 우리 안의 거짓 질서는 무너지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가 시작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말과 선택과 관계 속에서 그 질서가 작게라도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https://youtu.be/xxgyvRyfO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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