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묵상일기 220 - 남겨진 자들의 숙명입니다.
2026. 6. 23. 05:00ㆍ묵상하는말씀/사도행전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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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7:8~9 군중과 시청 관원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였다. 그러나 시청 관원들은 야손과 그 밖의 사람들에게서 보석금을 받고 놓아주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무더위가 이어지는 아침입니다. 더위는 몸만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까지 빼앗아 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물을 자주 마시고, 무리하지 않고, 잠깐씩 숨을 고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아무리 좋은 일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오늘도 몸을 잘 돌보시고, 마음은 주님 안에서 평안을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에 시원한 은혜를 부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바울과 실라로 인해 도시가 웅성거렸습니다. 복음으로 사람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분명히 지금까지의 삶을 버리고 새롭게 살려고 다짐한 사람들이 생겼을 겁니다. 그에 반해 기존의 익숙한 질서를 지키려는 이들은 그들을 반대하며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큰 소동이 일어났죠.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두려 했지만 그들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야손과 몇몇 형제들을 잡아 시청 관원들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제 그 믿음의 무게를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사도행전에서 자주 보아 온 장면처럼 보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씨를 뿌린 현장은 언제나 기존 질서가 흔들리고 주님의 질서가 새롭게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하죠. 이런 현장에는 이를 거부하는 이들의 저항이 늘 있었고, 그로 인한 분쟁과 탄압이 뒤따랐습니다. 이런 과정을 우리는 성경에서 수없이 봐 왔죠.
그런데 제가 주목한 것은 조금 다른 관점입니다. 오늘 본문은 매우 짧고 특별할 것이 별로 없죠. 그저 고소당한 야손과 몇몇 형제들이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는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그나마 구속되지 않고 보석으로 풀려났으니 다행이다 싶은 정도가 우리가 나눌 묵상인지도 몰라요.
그런데 저는 여기서 특별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남겨진 자들의 책임과 같은 거죠. 남겨진 자들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시다시피 복음을 전한 인물은 바울과 실라입니다. 그런데 고소를 당하고 끌려간 사람은 야손과 몇몇 형제들이죠. 바울과 실라, 그리고 야손과 몇몇 형제들의 공통점은 같은 믿음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그 지역 사람이 아니라 외지인이었고, 사명의 여정 속에서 다음 도시로 떠나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야손과 몇몇 형제들은 그곳 사람들이었죠. 그곳에 집이 있고, 관계가 있고, 앞으로도 마주쳐야 할 이웃들이 있었어요. 그렇게 바울과 실라가 떠나고도 그들은 그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당연히 바울과 실라에게 향했던 화살이 그들에게 향할 것임은 뻔한 일이죠.
이게 남겨진 자들의 숙명입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우리가 바로 그들과 같은 남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떠나가는 것이 오히려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죠. 그것은 제자들을 버리신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성령 안에서 제자들이 이 땅에서 예수의 길을 살아가게 하시려는 부르심이었던 거죠. 제자들은 하늘을 바라보지만 땅 위를 걸어야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믿지만 제국의 도시 한복판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땅의 직장과 가정과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믿지만, 여전히 경쟁과 계산과 불안과 손해가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불리할 수 있습니다. 약자의 편에 서면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용서하려 하면 자존심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려 하면 상처받을 위험이 생깁니다.
우리도 때때로 보석금을 냅니다. 돈으로만 내는 것이 아닙니다. 선하게 살려다 손해 보는 것으로 냅니다. 정직하게 살려다 불이익을 받는 것으로 냅니다. 사랑하다 상처받는 것으로 냅니다. 화해를 선택하다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으로 냅니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려다 세상의 계산에서 밀리는 것으로 냅니다. 이것이 남겨진 자들이 내는 영적 보석금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대가를 너무 억울함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 때문에 감당한 수고를 잊지 않으십니다. 복음 때문에 치른 대가를 헛되게 두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언제나 눈에 보이는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하나님 나라 안에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수고는 우리를 더 깊은 사람으로 만들고, 누군가의 길을 열고,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됩니다.
야손과 형제들이 그 뒤에 어떻게 살았는지, 성경은 더 말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짧은 구절에서 남겨진 자들의 숙명을 봅니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습니다. 떠난 사람은 다음 자리로 가지만, 남겨진 사람은 그 자리에서 복음이 참되다는 것을 삶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우리도 오늘 이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입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선택하고, 상처를 받더라도 사랑을 선택하고, 불편하더라도 약한 이웃 곁에 서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무더운 이 계절에도 우리가 선 자리마다 복음이 조용히 뿌리내리는 하루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https://youtu.be/rgDiqgU_I_I?si=ZBXmyPMCQN73lo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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