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묵상일기 07 -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입니다.

2023. 4. 25. 06:50묵상하는말씀/요한일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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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1:3~4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요즘 감기가 유행하고 있나봐요. 곳곳에 아픈 분들이 많으시네요. 우리 공동체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도 늘 건강하게 밝고 기쁜 마음 잃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도요한이 밝힌 요한일서의 저작의도에는 몇 가지 복합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초대기독교를 강타하고 있는 영지주의의 잘못된 사상에 대한 반박이었죠. 그것이, 어떤 의도에서인지는 몰라도 오랫동안 예수의 기록에 대해 미루어왔던 사도요한에게 그 기록의 필요성을 깨닫게 만든 계기였죠. 그렇다고 그것만이 저작의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예수를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알림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그는 기독교 세력의 확장을 위해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또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기 위해 사상을 강요하지도 않았죠. 그가 예수에 대해 알리고자 했던 것은 '기쁨'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기쁨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 사실이 시기적으로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요한일서가 쓰인 시기는 대략적으로 서기 100년경쯤입니다. 이때의 이스라엘이 어땠을까요? 예수님의 시대에도 이미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때는 어쩌면 조금 느슨한 식민지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AD. 70년경 이스라엘은 전쟁에 휩싸이죠. 로마와 유대 간의 전쟁입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예루살렘은 초토화가 되죠. 예루살렘 성전은 불에 타 없어지고, 처참한 유대 말살 정책이 자행됩니다. 그때 로마는 유대인들에게 상징처럼 예루살렘 성전의 한 벽을 부수지 않고 남겨 전쟁의 참혹함을 교육하려 했는데 그것이 지금의 통곡의 벽이죠.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노예로 끌려갔고, 그중에서 약 10만 명의 사람들이 콜로세움 신전을 짓는데 동원되기도 했죠. 그뿐이 아닙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의 박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기장에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는 일들이 그때 벌어졌습니다.
 
그 상황을 우리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거예요. 그런데 기쁨이라는 것이 가능할까요? 아니 기쁨이라는 말을 꺼낼 수가 있을까요?
 
어떤 분이 책에서 그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슬픔을 알지 못하는 자는 기쁨도 알 수 없다고요. 아파서 눈물을 흘려보지 못한 사람은 기쁨의 눈물도 흘릴 줄 모른다고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같은 눈물인데 우리는 슬퍼도 울고, 기뻐도 울죠. 어쩌면 기쁨은 슬픔을 닮았는지도 모릅니다. 이 말은 슬픔과 기쁨이 같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쁨은 슬픔 속에서 피어난다는 뜻입니다.
 
다 좋아서 기쁜 것이 아닙니다. 다 만족해서 기쁜 게 아니에요.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얻고, 내가 바라는 대로 다 되어서 기쁘지 않아요. 우리 인간처럼 익숙해지는데 탁월한 생명도 없을 거예요. 어쩌면 우리는 얻고, 받고, 이루는데 익숙해지면 그것이 당연한 줄 알겠죠. 누가 그랬던가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요. 모든 것이 좋아서 기쁨이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론 가슴 졸이며 애타게 기다리고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노심초사 기도하다가 만난 그 만남에서 우리는 기쁨을 얻기도 합니다. 때론 피땀 흘린 각고의 수고를 거쳐서 얻은 작은 것에서 기쁨을 맛보기도 하죠. 기쁨의 값짐은 진흙 속에서 찾는 진주처럼 거친 삶의 여정에서 드러납니다.
 
아플수록 기뻐하세요. 이게 참 모순인데요. 때론 아파서 느끼지 못했던 감사가 있기도 하고, 아파서 오히려 작은 것에 기뻐할 때도 있죠. 우리의 회복은 그렇게 아프고 어렵고 고생하고 처절할 때 찾은 작은 기쁨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거예요. 진정한 기쁨은 슬픔 속에서 피어납니다. 진정한 기쁨은 죽음 속에서 드러나고요. 진정한 기쁨은 어쩔 수 없는 죄인에게서 시작됩니다. 그것을 깨고 나아가는 그 기쁨의 자리,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기쁨이죠.
 
실패했을 때 기쁨을 찾으세요. 그게 진짜입니다.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입니다. 화가 날 때 웃는 자가 일류예요. 아플 때 웃고, 심각한 벽에 부딪힐 때 웃으세요. 그 웃음이 나를 그 아픔에서, 절망에서 구원할 거예요. 그것이 주님의 기쁨입니다.

https://youtu.be/GmG--lRNPB8?si=O-9disP0DJjFXk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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