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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요한일서묵상일기

요한일서묵상일기 05 - 믿음은 증언입니다.

요한일서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랜만에 묻네요. 여러분은 오늘을 좋은 아침으로 선포하셨습니까? 믿음의 스위치를 켜셨나요? '오늘은 좋은 날이 될 거야!' '오늘을 좋은 날로 만들 거야!' 믿으시나요? 그렇다면 그런 믿음의 마음으로 여러분은 아침인사를 하셨습니까? 좋은 기분, 좋은 믿음, 좋은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셨습니까? 왜 안 하셨나요? 혹시 안 하신 것이 아니라 그런 날이 될 것을 믿지 못하신 건 아닌가요? 뭐 아침부터 지적질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말하지 않고, 다른 이들과 공유하지 않는 것은 믿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확신하는 것들이라면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실 거예요. 좋은 것이라면 말할 거고요. 내가 믿는다면 알려주려고 애를 쓸 테죠. 저는 우리가 믿음대로 말하고 나누고 공유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도요한은 자신이 이 글을 쓰는 목적에 대해 오늘 본문에서 밝힙니다. 그가 주님에 대해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적는 이유는 바로 사귐을 갖기 원해서라고 말이죠. 사귐이라는 말이 우리는 좀 낯설죠? 그러나 헬라어의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라는 말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교제' '나눔' '사귐'의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죠. 서로 사랑의 교제를 하고, 가진 것을 나누는 등의 행동은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삶의 패턴입니다. 아마도 그 교제에 대해 특별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가 이 코이노니아를 이해하는 데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아는 것, 내가 믿는 것,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알리고 선포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죠. 사귐이라는 것은 그저 알고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교제라는 것은 그저 인사하고, 웃고 떠드는 것이 아니에요. 누군가와 사귄다는 뜻은 내가 믿고 있는 것들,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공유한다는 뜻입니다. 교제라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믿음을 나눈다는 뜻이죠. 그래서 우리는 나의 믿음을 입으로 표현하고 느낌을 나누고 믿음이 이끄는 삶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증언입니다. 믿음은 간증이고 증인이 되는 거예요. 내가 간증할 수 없는 것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증언하고 증인 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믿고 있지 않다는 뜻이죠.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표현되어야 합니다. 나눠야 하고 공유해야 합니다. 전도가 그래요. 딱히 무슨 전도운동을 해서 초대교회가 퍼진 것이 아닙니다. 또한 교회의 세력을 키우려고 애쓴 것도 아니에요. 그들은 그저 자신이 믿는,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참을 수 없어 선포하고, 간증하고, 나누고, 공유했던 것뿐이죠. 그렇게 믿음은 사귐의 영이신 성령님의 바람을 타고 흐르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믿는 것들이 나를 통해 흘렀으면 합니다. 그렇게 내가 말하고, 표현해야 그 믿음은 확실해지고, 내가 믿는 것을 선포해야 주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일하시죠. 믿음은 감춰지지 않습니다. 믿음은 마음에만 머물지 않아요. 여러분의 믿음이 나를 넘어 주변에, 온 세상에 흘러넘치기를 기도합니다. 한번 흐른 내 믿음의 마중물은 넘치는 주님의 생명샘 우물물이 되어서 돌아올 거예요. 

https://youtu.be/xVHuW1dj6Sw?si=YfHKSoRUMpzIKg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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