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묵상일기 29 -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맡길 때 나의 영혼이 자유합니다.

2022. 9. 30. 06:56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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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3:16~18   그러나,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서면, 그 너울은 벗겨집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제가 매일 묵상을 하면서 제일 힘들고, 또 가장 감사한 때가 바로 금요일 아침입니다. 힘들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는 것이 모순이죠? 힘든 이유는 매일을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 우리에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월요일 아침에는 뭔가 새로운 마음으로 다짐도 하고 잘해보려는 마음도 있죠. 그래서 매일 묵상에 의지를 가지죠.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며 그 의지가 점점 사그라집니다. 때론 마지못해 묵상에 임하는 경우도 있죠. 그렇게 일주일의 끝을 갈수록 힘겨워지죠. 그런데 금요일에 이르면 안도가 됩니다. 일주일을 잘 지속했다는 안도와 함께 감사함이 몰려오죠. 제게 토요일은 침묵의 하루입니다. 그리고 주일을 맞죠. 신기한 일은 우리의 지속된 매일 묵상이 주일 하나님 앞에 서는 우리를 은혜로 이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은혜는 우리의 성실과 꾸준함, 의지와 노력 위에 부어지죠. 오늘까지 일주일을 묵상으로 함께 하신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그 성실과 지속함에 상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넘치길 빕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서면, 그 너울은 벗겨집니다."

 

개역 개정본에는 없는 따옴표를 새번역은 써서 이 글을 쓰고 있죠. 아시다시피 따옴표는 인용구와 같은 문장에 쓰이는 문장 부호죠. 새번역은 왜 이 문장에 따옴표를 썼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이 문장이 당시 중요하게 인용되는 문구여서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초대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하는 문구 가운데 하나로 사용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바울은 모세의 수건 사건과 연결해서 사용하고 있죠. 모세는 사람들에게 나설 때는 수건을 두른 대신 하나님께 나설 때는 수건을 거두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면 수건이 벗겨진다는 뜻이죠. 이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하나님이 성육신 하셔서 이 땅에 오신 메시아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이 문장에서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돌아선다'는 단어입니다. 돌아선다는 단어가 눈에 띈 이유는 이것이 회개와 연관된 단어이기 때문이죠. 회개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는 것을 의미하죠.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이 회개가 신앙에 중요한 전환점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돌아선다는 의미를 상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바울은 율법과 결부시켜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는 중입니다. 율법을 쉽게 표현하면 '자기의 의'(self-righteousness)죠. 율법을 지키는 자들의 의로움을 강조합니다. '자기 의'라는 말도 좀 어렵죠? 조금 더 쉽게 지금까지 적용하며 해왔던 말 가운데 찾으면, 자신의 열심, 자기 노력이라고 할까요? 그럼 조금 더 쉬울지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한 노력으로 인생을 평가하려는 시도가 율법주의일지도 몰라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만 연이어서 우리는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율법이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고도 했죠.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노력을 마다치 말아야 합니다.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요. 노력이라는 어려움을 마치 지겨운 구시대 유물처럼 여기는 것에 저는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습니다. 노력에 대한 정의의 정도 차이는 있겠으나 그러나 내가 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고, 뿌리지 않고 거둘 수 있는 것 또한 하나도 없음은 불문가지죠.

 

그런데 율법주의라고 일컫는 사상의 중심은 그 노력으로 내가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죠.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씀은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어요. 우리가 뿌렸다고 다 거두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죠. 농부가 씨를 뿌리면 끝나는 것이 아니죠. 아무리 열심히 뿌리고 끝없는 대지에 최선을 다해 뿌려도, 이후 그가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해와 비바람, 기온과 날씨 등을 기원하죠.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뿌린다고 다 걷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속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뿌리는 노력 위에 임합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 이후 우리 눈을 돌려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것이 돌아서는 것이죠. 회개가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죄에서 멀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잘못을 버리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아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늘 회개를 달고 살아야 합니다. 진짜 회개는 우리가 잘못을 버리는 노력을 다한 후에, 우리가 죄에서 멀어지는 최선을 다한 후에, 물론 죄에서 멀어지는 것은 죄가 아니라 은혜를 묵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후에, 이제 주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것이죠. 이제 돌이켜서 주님께 얼굴을 들고 그분의 하시는 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저는 운전하기 전 핸들을 잡고 기도를 합니다. 뭐 목사라서 기도하는 것은 아니에요. 진짜 운전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제 기도는 이렇습니다. '하나님, 딴생각하지 않고 운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나 이외의 주변 상황들, 다른 교통 상황들, 다른 운전자들로 인한 문제들에는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이것이 저의 기도입니다. 나만 잘한다고 사고가 안 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내가 잘해도 다른 상황에 의한 문제는 벗어나지 못하잖아요? 그것은 그저 주님의 처분에 맡길 수밖에요. 아무리 일을 잘하려고 해도 세상이 내 마음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내가 아무리 준비를 해도 뜻대로 세상이 움직여주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하고, 그래도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후에, 이제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바라고 기도하는 그 돌이킴이 바로 회개입니다.

 

은혜받기 원하시죠? 지금 기도하는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시나요? 어떻게 그 바람과 기도를 이루고 계십니까?  관계가 좋아지기를 바란다면 최선을 다해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고 사랑을 품는 노력을 다한 후에 이끄시는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길 원하시나요?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으신가요?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적어도 주위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그것도 관계가 좋지 않은 이들에게까지, 이제 관계를 개선하고 함께 기도하는 관계로 만들겠다는 노력을 기울이며 중보기도자를 만들고, 자존심을 버리고 나의 상황에 기도가 필요하다고 간절히 구하는 노력 위에 주님의 은혜를 구하면 어떻겠습니까?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맡길 때 나의 영혼이 자유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이제 하늘의 뜻에 맡길 때 내 마음이 평안해요. 그 은혜가 모일 때 나의 역량은 더 커지고, 나의 최선은 더 넓어질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성장하죠. 땀과 수고로 성장하는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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