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5. 07:00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 4: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여러분의 종으로 내세웁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잘 모르는 나만의 일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일이라면 그러려니 하는데 그게 타인을 위한, 혹은 공동체를 위한 일이라면 의미가 좀 다르죠. 가령, 공동체에서 누군가 마실 물을 떠다 먹기 좋게 놓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대부분은 그저 당연히 있을 자리에 있는 것인 줄 알죠. 좀 우스운 이야기인데 제가 새벽에 집을 나설 때마다 문 여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저희 집이 조금 독특해서 저희 현관문이 옆집 바로 창문에 붙어 있거든요. 그런데 문 소리가 큽니다. 혹시 잠이 깰까 이웃이 시끄러울까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닫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사실을 옆집은 알까? 하고요. 그런 일들이 의외로 많죠? 어느 때는 이렇게 애쓰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때가 있죠. 그런데 알아주던 안 알아주던 우리는 그런 마음과 모습으로 계속 살아가겠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 하나님은 그 작은 마음조차 아시고 우리의 섬김으로 받아주실 테죠. 그것이 복음이라면 어떠신가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듣기에는 당연한 말인데요. 그런데도 이 말을 굳이 하는 이유는, 아마도 당시 바울은, 자신의 사역이 자신을 알리고 드러내는 일처럼 곡해하는 소문에 시달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울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자신의 명성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된 율법과 교리를 퍼뜨린다고 했던 것으로 보이죠. 또 같은 교회 내에도 반대자들이 있었는데요. 그들은 바울이 전면에 드러나며 모든 기독교 교리를 독식하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그가 그리스도보다 더 앞서간다고 주장했던 것 같아요. 그런 주장에 대해 바울은 단호하게 선언하죠. 자신이 전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이죠.
아울러 그는 자신의 목표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는 말을 남깁니다. 이미 바울은 율법이 올무라면 복음은 자유라는 대조법으로 복음에 대한 정의를 내린 바 있죠. 그런데 그 자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폅니다. 그것은 풀리는 자유가 아니라 묶이는 자유죠. 이미 우리는 자발적 구속에 대한 이야기를 묵상한 바 있죠. 자유에는 할 수 있는 자유도 있지만 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고 말이죠. 성공할 자유도 있지만 실패할 자유 또한 있습니다. 율법은 늘 한 편 쪽에 손을 들어주죠. 성공과 실패, 자유와 구속, 부유와 가난, 그중에 하나에 힘을 실어 줍니다. 그러나 복음은 자유라고 했죠. 어느 편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편일지라도 그에게 자유가 있다면 그는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목표가 자발적인 종이 되는 것이라고 선언하죠.
자발적 구속에 대한 가치를 지난 주일, 함께 나눴죠? 나의 성장을 위해, 얻기를 위해, 더 깊은 곳으로 가기 위해 우리에게는 자발적 구속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오늘 바울은 그런 의미의 자발적 종이 되기를 선포하죠.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가치라고 말이죠.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힘입어서 스스로 낮은 자리로 들어가는 믿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섬기는 자는 섬김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에 힘입어서 자발적인 종의 길로 내려가는 겁니다. 그것이 자신의 꿈이고,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말이죠.
저는 오늘날 그리스도인, 특별히 한국교회에 이 말씀이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학식을 전하는 것도, 우리의 멋진 경영 시스템을 전하는 것도, 또한 화려한 연출과 드라마틱한 퍼포먼스를 선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단기간 놀라운 전도의 방법들을 시전 하는 것도 교회의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직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하고, 오직 성도는 이웃의 종이 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일 뿐이죠. 복음은 문화가 아닙니다. 복음은 분위기나 기류도 아니죠. 복음은 사람입니다. 복음은 성품이고요. 복음은 가치관입니다. 어떤 문제 앞에서도 선한 눈을 버리지 않는 것이고, 어떤 공격 앞에서도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의 이름이 빛나기보다, 목사의 이름이 앞서기보다, 이웃을 섬기고 나와 다른 이들을 귀히 여기는 그리스도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타 종교와 싸우고 나와 다른 이념이나 취향과 싸우며, 십자군 운동을 하는 율법적 대립을 떠나, 낮은 자리를 위해 싸우고 섬김의 자리를 애쓰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조용히, 모든, 나와 같든지 다르든지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 곁에서 함께 울고 웃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가치니까요. 오늘도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모든 이들에게 넓은 가슴을 펼치며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게 될 것을 믿습니다.
'묵상하는말씀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린도후서묵상일기 37 - 통증은 선물입니다. (0) | 2022.10.12 |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36 - 잘 지고 잘 늙어야 합니다. (0) | 2022.10.11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35 - 십자가 없는 면류관은 없습니다. (0) | 2022.10.10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34 - "내 편에 있는 사람이 더 많다." (0) | 2022.10.07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33 - 세상에 하찮은 사람은 없습니다. (0) | 2022.10.06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31 - '태양이 구름에 가려 햇빛을 볼 수 없을 때에도 나는 구름 위에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0) | 2022.10.04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30 - 나를 드러내세요. (0) | 2022.10.03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29 -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맡길 때 나의 영혼이 자유합니다. (0) | 2022.09.30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28 - 복음은 율법이 아닙니다. (0) | 2022.09.29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27 - 더 통쾌한 복수는 악을 선으로 갚는 일입니다. (0) | 2022.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