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6. 06:59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 2:16~17 그러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냄새가 되고,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향기가 됩니다. 이런 일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저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훌쩍 일주일이 지나갔습니다. 연휴가 있었던 때문인지 유독 빠르게 주말이 다가왔네요. 그래도 아쉬움보다 보람된 마음을 더 많이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후회보다는 기대를 더 많이 하는 오늘이었으면 해요.
어제 묵상에서 바울은, 내 뜻대로 일이 풀릴 때나 혹은 그렇지 못할 때나,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또 그렇지 못할 때나 그 언제 어느 때든지, 여전히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씀드렸죠? 원하고 바라던 대로 일이 이루어지고 저절로 감사가 흘러나오는 때만 주님이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괴롭고 지난한 인고의 시간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시며 그 고통 가운데서도 선한 일을 하시는 분이시죠. 그것이 바울의 믿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과 그분은 나를 위해 일하신다는 사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주님은 나를 푸른 초장과 맑은 시내로 인도하신다는 것이 믿음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이 복음이 믿는 자에게는 정말 아름답고 값지며 흥분되는 이야기일지 몰라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엉뚱하고 미련한, 심하게는 사기꾼의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네요. 좀 유치한 예이긴 합니다만 어릴 적 저는 잔병치레가 많았습니다. 그 와중에 한 번은 심한 고열과 두통으로 앓아누운 적이 있는데 어머니께서 한약을 지어 오셨어요. 그런데 그 냄새가 정말 고약했습니다. 도저히 먹기는커녕 가까이 댈 수도 없는 지경이었죠. 그 자리서 뿌리치는 제게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죠.
"덜 아픈 모양이구나? 덜 아프니 냄새가 지독하지. 아파서 낫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이 약도 달고 향기로운 거야."
물론 낫기를 바랐지만 결코 그 약의 냄새는 맡기 고역일 정도로 여전히 고약했습니다. 코를 막고 겨우겨우 먹었던 기억이 나죠.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약을 먹고 씻은 듯이 나았다는 거죠. 그 이후 제게 어떤 변화가 왔는지 아십니까? 한약에 대한 무한 신뢰가 제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어른들 말씀하셨던 이야기를 제가 하고 있더라고요.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거여~"
멸망한다는 말이 요즘 사람에게는 좀 낯설고 먼 이야기처럼 보이죠? 이것을 뭘 해도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조금 이해가 될까요?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늘 비관적이고, 늘 비판적이며 부정적인 사람이 대표적입니다. 모든 일에 나쁜 상상만을 골라하고, 되지 않을 것을 미리 상정하는 사람들이죠. 이런 사람 있죠? 100번을 잘하다가 한 번 잘못한 것 때문에 모든 인생이 그 하나로 평가되는 사람 말이죠. 정말 생각해 보면 인정머리 없는 짓이죠. 사람들은 잘한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여기고 잘 못한 것에 대해서는 가차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매정한 거죠. 그런데 우리도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달려가 위로하고 격려하고, 모든 일에 발 벗고 도왔던 사람이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그 모든 사랑의 열매들은 다 사라지고 상처만 외치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 그럴까요? 다름이 아닙니다. 늘 잘못될 것에, 나를 무시하는 상처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나를 위해 애쓰고, 사랑하고, 위로하고, 함께하는 그 은혜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런 수고는 쉽게 잊어버리고 상처만 간직하며 살죠.
과연 누가 손해일까요? 수많은 악들이 난무하고 잘못된 일들, 공격과 상처들이 휑휑하는 지금도 오직 누군가에게 받은 작은 사랑, 푸른 새싹같이 피어난 은혜와 감사들을 기억하고 기뻐하며 사는 사람이 손해일까요? 아니면 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고, 위해 기도하는 이들이 함께 하는 가운데서도 자기만을 생각하고 받은 상처만을 움켜 잡으며 늘 잘못될 것만을, 안 될 것만을, 나쁜 것만을 상상하며 경계하고 사는 사람이 손해일까요?
오해하지 마세요. 세상은 마냥 좋은 곳이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 나를 넘어뜨리려는 무리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죠. 그런데 그곳에 또한 사랑의 불씨가 살아있는 것도 사실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것이 더 강력한지, 어떤 것이 더 힘이 센지는 차치하고, 지금 내 마음에 어떤 것을 붙드느냐에 따라 우리의 길이 정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하죠.
나에게는 죽음의 냄새가 흐를까요? 아니면 생명의 향기가 날까요?
오늘도 나는 좋은 기분을 유지해야 합니다. 향기 나는 말을 해야 하고 밝고 환한 마음을 가져야 해요. 어두운 음성이 우리에게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염려 마세요. 우리는 거기에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 나쁜 일들이 생기든 말든, 어두운 음성이 우리를 부르든 말든 우리는 좋은 생각과 은혜만을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서 향기를 발하기 위해서 말이죠. 누가 보든지 나의 입술과 얼굴에서 생명의 향기가 피어오르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오늘도 향기로운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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