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묵상일기 22 - "나는 숟가락을 얹었을 뿐인데..."

2022. 9. 21. 07:00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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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3:4~5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게서 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격은 하나님에게서 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직 더위가 미련이 남았나 봅니다. 어제는 여전히 덥더군요. 아직 여름이 끝나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늘을 보니 가을의 푸르름이 있더라고요. 가끔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무덥고 찌는듯한 목마름이 있지만, 하늘에서는 이미 하나님의 일하심이 일어나고 변화의 바람, 도우심의 손길이 시작되는 때가 있습니다. 하늘을 보면 곧 올 계절이 보이듯, 하나님을 향하면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의 계획이 보입니다. 오늘도 무더위에 지친 몸일지라도 주님이 준비하신 상큼한 가을바람을 기억하는 하루 되시길 빕니다.

 

언젠가 영화 시상식에서 어떤 유명 배우가 한 시상 소감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 소감이 대충 이러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항상 사람들한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고. 왜냐하면 60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스포트는 제가 다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스러워요.”  

 

오늘 바울은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이 확신이라는 말은 깊은 이해가 필요하죠. 많은 이들은 확신이 자기 의(義)인 줄 알아요. 마치 자기가 결정하고 생각한 것을 확고히 붙드는 것쯤으로 생각하죠. 그런데 바울은 확신이라는 말과 함께 이런 말도 합니다. 자신의 자격은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났다고요. 이 말씀이 위에 언급한 배우의 시상 소감과 연결되어 떠올랐습니다. 배우가 확신한다면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 혼자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아닐 거예요. 그가 해야 하는 확신은 이 감독이라면, 이 스태프라면, 이 돕는 자들이라면 자신이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감독을 믿고, 스태프를 믿고, 그는 단지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연기를 하면 되는 거죠. 그것을 그 배우는 맛있게 먹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확신도 마찬가지죠. 자기를 믿는 확신이 아닙니다. 자기의 뜻을 고집하는 것이 확신이 아니에요. 나를 위해 일하시고, 나를 위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며,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자신은 그저 그분의 계획과 섭리에 맡기고 따르는 겁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확신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은 것뿐인데 스포트라이트는 내가 받아요. 그저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계획을 믿고 참여하며 동승했을 뿐인데, 그래서 나의 나됨은 다 하나님의 은혜일 뿐인데, 그런데 내가 복을 받고, 내가 잘되고, 내가 은혜와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확신은 그런 거예요.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고, 모든 것이 그분의 능력인데, 복은 우리가 받고 영광의 자리에는 우리가 섭니다. 그게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죠.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요. 아무도 믿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삽니다. 버스 기사님을 믿기에 맘 편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고요. 사회의 질서를 믿기에 한 밤에도 편안히 길을 걸을 수 있는 거죠. 우리의 모든 일상에 믿음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류의 원리죠. 그 원리의 기초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나를 창조하시고, 선한 일을 시작하시며, 그 일이 이루어지기까지 지키시고 함께 하시는 그분을 믿고, 나의 삶을 던지는 것이 인생이죠. 그 인생이 빛나는 인생입니다.

 

'나는 숟가락을 얹었을 뿐인데', 주님은 나를 빛나게 하시죠. 믿음과 확신이 빚어내는 조화로운 신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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