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4. 07:00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 2:8~11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그에게 사랑을 나타내어 보이기를 권합니다. 내가 그 편지를 쓴 것은, 여러분이 모든 일에 순종하는지를 시험하여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에게 무엇을 용서해 주면, 나도 용서해 줍니다. 내가 용서한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앞에서 여러분을 위하여 용서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가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속셈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직 한낮의 열기는 가시지 않았지만 선선한 가을바람과 그윽한 가을 하늘의 정취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러다 곧 추워지겠죠? 겨울을 준비하는 과정 가운데 주어지는 가을날의 향기가 우리 모두에게 평안함의 은혜되기를 빕니다.
문제가 없는 곳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에는 각종 사건 사고들이 있죠. 어쩌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모두가 다 똑같은 마음이겠습니까? 여러 마음들이 함께 모여서 서로 협력하고 서로의 주장을 펼치다 보면 충돌과 반목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죠. 이는 어쩌면 서로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일지도 몰라요.
문제는, 각종 다툼이나 충돌이 잘하려다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방해나 훼방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제들은 자기의 뜻대로 잘해보려다가 서로 다른 의견으로 되돌릴 수 없는 싸움과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사실 억하심정이 아니고야 마음먹고 나를 방해하려고 쫓아다니거나 훼방하려 타깃으로 삼고 공격하는 이들은 없죠. 이제 원수가 되는 일은 오랜 시간 전통적인 철천지 원수 가문이라든지, 혹은 뜻 모를 이념 대립으로 세뇌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서로 자신의 일을 잘해 보려다가 생기는 경우죠. 잘 살아보려다가, 잘해보려다가, 성공하려다가 서로의 마찰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원수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쩌면 고린도 교회도 그랬을지 몰라요. 물론 복음 전파를 방해하려는 세력이 없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사탄으로 일컬어지는 세력은 주체적으로 우리를 공격하지 못합니다. 그들에게는 직접적이고 주관적으로 우리를 공격할 무기가 없습니다. 대신 그들의 유일한 공격 수단은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약점, 우리의 빈 곳을 이용해서 우리를 넘어뜨리죠. 그러니까 우리가 미워하는 감정, 혹은 분노, 부정적인 느낌과 생각을 하는 순간, 그것은 그들의 무기가 되고 공격 거리가 되죠. 그래서 분란이 생기면 그들의 전략과 전술이 판을 치게 되는 겁니다. 고린도 교회의 분란도 그들의 전쟁터였고, 또 먹잇감이였을 것이 틀림없어요. 그럼에도 가만히 생각해서 그렇게까지 된 과정을 살펴본다면 자신들이 알든 모르든 반목을 가져왔던 각종 주장과 교리들은 어쩌면 자신들조차 잘해보려고, 복음을 더 잘 전해보려고, 더 잘 가르치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인간관계가 그래요. 사랑한다고 죽자 사자 끌어안고 만났는데 나중에 보면 원수가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달라졌다고 말하고, 내가 잘못 봤다고 말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서로 사랑을 잘해보려고, 가정을 잘 이끌어보려고 나름대로, 정말 서로 나름대로 자기의 주장을 펴다가 부딪치고 상처 주고 깨지고 무너지는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잘해보려고 의견을 냈다가 무시당하면 이제 잘해보려는 의견은 사라지고 무시당했던 기분만 남아서 그것으로 화내고 싸우는 일이 다반사죠.
바울은 어제 본문에서부터 분란을 일으키고 대적했던 이들을 향해 사랑과 용서를 베풀라고 말했죠. 오늘은 그 요청에 순종하기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죠. 오래전에 어떤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사탄은 우리에게 나쁜 이야기를 해서 우리를 몰락시키는 경우보다 좋은 이야기를 해서 몰락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고요. 조금 더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이제 복음에 눈을 뜨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가 열린 초신자가 있었는데요. 그는 말씀 읽기를 좋아하고 이로 인해 깨달음을 얻고 믿음이 좋아졌죠. 그렇다면 사탄이 이를 방해해야겠죠?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바쁜 일들을 만들고 정신이 없게 해야겠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저자는 새로운 견해를 말하더라고요. 오히려 사탄은 성경을 더 읽도록 독려한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신앙을 도와주는 것일까요? 천만에요. 사탄은 이렇게 말한다죠. "성경을 읽어야지, 지금 잘 시간이 어디 있어? 성경만이 너의 살길이야. 일은 무슨 일? 가정 일이 대수야? 직장이 대수야? 그 시간에 성경을 읽어라. 그러지 않으면 넌 망할 거야!" 재미있는 이야기죠? 물론 하나의 예이긴 합니다만 우리에게는 적당히라는 것을 놓치는 순간부터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우리를 상하게 하는 날카로운 칼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너무 몰아붙이지 마세요. 다 잘하려고 하다가 그런 거예요. 나를 도와주려고 하다가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고요. 나를 위해서 말했다가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상처와 감정에만 집중하다 보면 본래 하려던 마음과 생각, 숨어 있는 행간을 읽지 못하고 어리석은 결정을 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어른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죠. 숨어있는 뜻을 찾고, 이면에 흐르는 물줄기를 볼 줄 아는 것이 어른 아닌가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 잘하려다가 그런 것이고, 좋은 가정 만들려다 그런 것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어요. 태어날 때부터 나를 괴롭히려고 몰래 만나 가족이 되고, 중요한 인물이 되어서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 나를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영화 같은 인생이 있겠습니까? 다 사랑해서 만나고 잘해보려고 노력하다 무엇인가 틀어진 감정과 기분 탓에 보기도 싫은 사람이 되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승리는 끝장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승리는 본래 하려던 그 사랑, 본래 잘하려고 했던 그 마음, 잘 가꿔보려고, 잘 살아보려고 했던 그 순간을 되살려내고 깨우치는 것에 있어요. 상처보다 더 깊은 사랑, 깨진 감정보다 더 오랜 인연이 모두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승리죠.
오늘도 우리의 감정을 어렵게 하는 일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잘못을 지적하고 적당한 항의는 우리의 권리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몰아붙이지는 마세요. 내 마음을 그 이상으로 자라게 하지 마세요. 지적하고 항의하는 권리까지 우리의 일이고, 그 이상의 감정을 품고 원수 지는 일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내 마음을 위해서도, 내 평화를 위해서도 감정을 너무 몰아붙이는 일은 하지 마세요. 내 용서와 이해를 먹고 누군가는 성장하고 변화하고 새롭게 살아갈 것을 기대하며 오늘도 여러분의 넓은 마음을 펼치시길 기도합니다.
'묵상하는말씀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린도후서묵상일기 23 - 내게 사명을 주시는 이유는, 감당할 능력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0) | 2022.09.22 |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22 - "나는 숟가락을 얹었을 뿐인데..." (0) | 2022.09.21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21 - 신앙은 삶에서 드러납니다. (0) | 2022.09.19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20 - 당신에게서 생명의 향기가 납니다. (0) | 2022.09.16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19 - 잘 되는 일에서만 빛이 나는 건 아닙니다. (0) | 2022.09.15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17 - "네가 돌아서는 것만으로도 너는 승리자다" (0) | 2022.09.13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16 - 사랑은 결코 지지 않습니다. (0) | 2022.09.12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15 - 가까이 있어서 잘 몰랐습니다. (0) | 2022.09.09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14 -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0) | 2022.09.08 |
고린도후서묵상일기 13 -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은 없습니다. 다만 내가 가는 길에 하나님이 계실 뿐이에요. (0) | 2022.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