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5. 06:57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후서묵상일기
고린도후서 2:12~15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고 드로아에 갔을 때에, 주님께서 내게 거기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여,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그들과 작별하고 마케도니아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어디에서나 우리를 통하여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나,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와 손길이 여러분의 시간 속에 함께 하시고 드러나시길 기도합니다.
바울은 눈물의 편지를 디도 편에 고린도에 보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디도와 드로아에서 만나기로 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혹시 어긋나면 마케도니아서 만나자는 이중의 약속을 하고 보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는 바울은 드로아로 갔죠. 드로아의 현 지명은 [트로아스]로, 튀르키예 서쪽 지중해 연안에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당시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구도시로 유명했을 것이라 생각되죠. 이곳에서 북쪽으로 약 10마일 정도 가면 트로이목마로 유명한 고대 트로이 유적지가 있죠.
바울은 사역을 위해 이곳에 갔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고린도에서 봉변을 당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돌아와서 간절한 마음으로 보낸 편지가 어떤 결과를 낼지 걱정스러웠겠죠. 몹시 궁금했을 테죠. 그래서 아마도 일손이 잡히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럴 때는 시간도 느리게 가죠? 기다리는 디도는 오지 않으니 안절부절못했을 거예요. 마음이 급했던지 바울은 아무 일도 못한 채 마케도니아로 갔습니다. 그곳이라고 괜찮았겠어요? 그런데 분위기를 바꾸어서 일까요? 시간이 흘러서일까요? 우리의 마음이 상하고 조급하면 묵상도 잘 이루어지지 않죠. 그건 바울도 마찬가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늘 조급함에, 흔들리는 감정에, 두려움과 걱정에 주님의 음성을 놓치고 묵상이 되지 않던 제 마음에 작은 위로가 되네요. 이런 때는 분위기 전환이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또한 휘몰아치는 감정이 조금 누그러지는 때, 시간이 좀 지나고 내 안에 강한 바람이 꺾이는 시간의 흐름도 좋은 방법이죠. 그래서 그런지 바울에게 어느 순간 하나의 깨달음이 찾아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깨달음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죠.
고후 2:14 그러나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어디에서나 우리를 통하여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 문장에서 제게 가장 강하게 다가왔던 단어는 개선 행렬도, 지식의 향기도 아닙니다. 제게 강렬하게 다가온 단어는 '언제나, 어디에서나'였습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떠올렸던 것으로 보여요. 왜냐하면 그는 쫓기듯 돌아왔고, 또 마지못해 드로아에 갔죠. 그리고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혀 마케도니아로 갔습니다. 우리도 그런 시간을 보내죠. 내가 원치 않는 길을 걷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은 감정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늘 괴로움이죠. 그런데 바울은 보았습니다. 그렇게 마지못해 간 곳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사실을 말이죠. 격정과 괴로움에 휩싸인 나일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통해 일하시는 것을 본 것입니다.
혹시 그랬을까요? 바울이 드로아나 마케도니아에서 가르치고 설교를 할 때 이웃을 사랑하고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라고 말했을까요? 자신은 지금 그 동료, 그 이웃들에게 상처를 받고 불편한 마음으로 있는데 말이죠. 혹시 근심 걱정하지 말라고 권면했을까요? 자신은 지독한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말이에요. 간혹 이렇게 이중적인 태도로 사역을 해야 할 때가 있죠. 그런데 그렇게 거짓말 같은 이중성의 사역을 통해서도 은혜와 위로를 받는 이들이 있는 것을 바울이 보았다면 어떨까요? 진심으로 회개하고 새롭게 은혜를 받는 이들이 있었다면요? 나 같은 것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느꼈다면 말이죠. 그때 그런 느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아픔도 하나님은 나를 당신의 개선행렬, 당시에는 가장 기쁘고 영광된 퍼포먼스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카퍼레이드를 벌이는 것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 비유로 개선행렬이라는 표현을 한 것이죠. 그 개선행렬에 나를 참여시키기 위한 큰 그림이라는 것을 바울이 깨달았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잘해서만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름다워서 그분의 향기를 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우리가 건강하든 아프든, 우리가 잘하든 잘 못하든, 우리가 의인이든 죄인이든,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통해 일하시며 우리를 당신의 나라에 참여케 하시고, 나를 통해 당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니까요.
잘 되는 일에서만 빛이 나는 건 아닙니다. 실패한 것 같고, 실수한 것 같아도, 심지어 후회할 일 조차도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개선행렬에 참여시키실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이 충만해서 평안할 때에도, 때론 감정에 휘말려 어려움에 처할 때도, 상황이 잘 풀리고 잘 나갈 때도, 때론 하는 일마다 막히고 사방의 적으로 우겨 쌈을 당할 때도, 여전히 언제 어느 때나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향기를 발하게 하시죠. 모든 일이 나를 위한 일이 되고, 모든 일이 주님 안에서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그러니 아프다고 절망하지 마세요. 실패했다고 낙망하지 마세요. 슬프다고 끝났다 하지 마세요. 언제 어디서나 주님은 우리를 위해 일하시니까요. 나의 모든 일 가운데 주님이 만지시면 그 어떤 것도 빛을 낼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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