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묵상일기36 -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입니다.

2020. 11. 23. 07:04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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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6:1~9,  주님의 궤가 블레셋 사람의 지역에 머무른 지 일곱 달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을 불러 놓고 물었다.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제자리에 돌려보내야 하는지 알려 주십시오." 그들이 대답하였다. "이스라엘 신의 궤를 돌려보낼 때, 그냥 보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그 신에게 속건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그러면 병도 나을 것이고, 그 신이 왜 여러분에게서 형벌을 거두지 않았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시 "그 신에게 무슨 속건 제물을 바쳐야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블레셋 통치자들의 수대로, 금으로 만든 악성 종양 모양 다섯 개와 금으로 만든 쥐의 모양 다섯 개를 바쳐야 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통치자들이 모두 똑같이 재앙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악성 종양 모양과 이 땅을 해치는 쥐의 모양을 만들어서 바치고, 이스라엘의 신에게 예를 차리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혹시 여러분과 여러분의 신과 여러분의 땅을 내리치시던 손을 거두실지도 모릅니다. 왜 여러분은 이집트 백성과 이집트의 왕 바로처럼 고집을 부리려고 합니까? 이집트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가게 한 것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온갖 재앙을 내리신 뒤가 아니었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새로 수레를 하나 만들고, 아직 멍에를 메어 본 일이 없는 어미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그 수레에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서 집으로 돌려보내십시오. 그런 다음에, 주님의 궤를 가져다가 그 수레에 싣고, 여러분이 궤를 가져온 허물을 벗으려면, 속건 제물로 보내는,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작은 상자에 모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 소 두 마리가 가고 싶은 대로 수레를 끌고 가도록 하십시오. 두고 보다가, 그 소가 그 궤가 본래 있던 지역인 벳세메스로 올라가면, 이렇게 큰 재앙은 그분이 직접 우리에게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소가 다른 곳으로 가면 그것은 그분이 우리를 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연히 그런 재앙을 당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온 오늘,

날씨는 쌀쌀하고, 발걸음은 무거울지라도,

우리에게 넘치는 감사는 막을 수 없는 하루가 되길 빕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올 때만 해도

블레셋은 날아갈 듯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목에 가시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궤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유는 이미 이전 본문에서 알려진 바입니다.

 

더 이상 다곤 신전에 하나님의 궤를 보관할 수 없었던 블레셋은,

어느 이름 모를 광야에 내팽개쳐 둔 채 몇 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고도 고민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이는 자신들이 한 일을 후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점쟁이들을 불러 하나님 궤를 돌려줄 방법을 찾죠.

 

그런데 블레셋의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이 이상한 말을 합니다.

 

3  "이스라엘 신의 궤를 돌려보낼 때, 그냥 보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그 신에게 속건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의 궤를 돌려줄 때, 제물을 바치라는 것은,

아마도 이스라엘에게 제물을 바치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미안하다는 표시일까요?

속건제라는 것이 하나님의 성물을 해하거나 누군가를 해했을 때

회개하고 돌이키는 목적인 것을 보면 비슷하죠.

 

그러나 그들의 말은 단순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또 이런 말도 합니다.

 

6  "왜 여러분은 이집트 백성과 이집트의 왕 바로처럼 고집을 부리려고 합니까?"

 

이건 또 무슨 말일까요?

기억하시나요?

이집트에서 출애굽을 하던 때, 이스라엘을 놓아주기 싫어서 고집부리던 이집트를 말입니다.

그들의 그런 고집이 재앙을 만나고 장자들의 죽음을 맞고서야 그쳤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이스라엘을 보내줍니다.

보내줄 그때, 이집트는 의복과 금은 패물까지 주며 보내죠.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블레셋 제사장과 점쟁이들은 지금,

그때의 일을 상기하며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기억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것을 반복하기 마련이다"라고 했죠?

지나온 역사는 단순히 지나간 시간이 아닙니다.

그 시간 속에 깃든 기억이 역사죠.

성경의 기록은 어쩌면

역사를 기억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인지도 몰라요.

하나님이 하신 일, 

하나님이 이끄신 시간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믿음의 출발이고, 신앙의 시작인지도 몰라요.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비극일 뿐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했는데
그 비극을 이 시대에 우리가
그대로 겪고 있습니다.

100여 년 전 자행한 역사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는 일본을 향해

비판을 쏟아내는 우리들이지만

정작 우리 또한 70여 년 전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고,

오늘도 반복된 냉전적 사고들을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픈 마음을 달랠 길 없습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입니다.

기억하는 자에게 역사가 주는 축복이 있죠.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대가는
또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 몫입니다.
영적 역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행하심을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가 있고, 믿음이 있습니다.

그분의 인도하심을 기억하는 자에게 소망이 있고, 인내가 있죠.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임하시는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는 자에게

그분의 사랑과 은혜가 멈추지 않고 흐르죠.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그 기억이 오늘을 감사로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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