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0. 06:23ㆍ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삼상5:1~5,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서, 에벤에셀에서 아스돗으로 가져갔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다곤 신전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다곤 신상 곁에 세워 놓았다. 그다음 날 아스돗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보니, 다곤이 주님의 궤 앞에 엎어져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그들은 다곤을 들어서 세운 다음에, 제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았다. 그다음 날도 그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가 보니, 다곤이 또 주님의 궤 앞에 엎어져서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다곤의 머리와 두 팔목이 부러져서 문지방 위에 나뒹굴었고, 다곤은 몸통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다곤의 제사장들과 다곤 신전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은, 아스돗에 있는 다곤 신전에 들어갈 때에, 문지방 위를 밟지 않고 넘어서 들어간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찬 기운이 창 너머로 들어오네요.
찬 공기로 잠을 깼습니다.
체감 온도가 0도라는 예보가 있습니다.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차림으로 오늘을 시작하시길 바래요.
사무엘상 5장은 신화 같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아시다시피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대승을 하죠.
그리고 그들은 대승을 축하라도 하는 듯 전리품들을 챙깁니다.
고대 전쟁의 승리는 전리품으로 상징됩니다.
각종 문화유산들이며, 귀금속은 물론,
땅과 지배의 권리를 챙기기도 하죠.
심지어 사람을 노예로 잡아가기도 합니다.
말이 좋아 전리품이지 사실상 약탈이에요.
고대 전쟁의 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쟁이 자신들이 믿는 신들의 대결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를 두고 신들의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래서 전쟁에 이기면 자신이 믿는 신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로 성전을 파괴하고, 성전의 유물들을 탈취해 가기도 했어요.
어쩌면 이는 패한 이들의 정신과 영을 말살하는 작업의 일환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궤를 전쟁의 도구로 사용한 것 또한,
고대 전쟁의 특징과도 같은 의미였을 거예요.
그러니 승리한 블레셋으로서는 자신의 전과를 위해
이스라엘의 신의 상징인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겠죠.
블레셋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법궤를
자신의 신전에 가져다 놓았어요.
그들이 믿는 신은 다곤이었습니다.
다곤이라는 신은 역사가 깊습니다.
수메르에서 그리스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흔적이 있을 만큼 오래되었어요.
형상은 특이합니다.
사람과 물고기가 결합된,
마치 인어공주를 연상케 하는 모양이었다고 해요.
때로는 문어와 같은 모양으로 상징되기도 하죠.
오늘 본문에 보면 그 신전에서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납니다.
다곤 신상들이 넘어지고 깨어져 버린 것이죠.
보이지 않는 신들의 싸움이 일어난 듯하죠.
그리고 승패가 정리되는 기분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를 두고,
하나님이 위대한 신이며,
그 앞에 모든 신들이 무릎을 꿇는 것으로 묘사하는 해석에는 그리 동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저 조금 우월한 신 정도의 해석이라면
오늘 본문의 의도는 아닐 거예요.
이는 범신론자들의 의견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오늘 본문에서 제게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는 이런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라고요.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온 이유는 다름 아닙니다.
하나님을 그들의 소유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죠.
이미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잘 알고 있다고 말씀드린 바 있어요.
하나님의 위대함을 실제로 경험하고 당해봤으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자신에게도 그런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했을 거예요.
그리고 그 능력을 이루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패턴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요.
우리도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싶고, 누리고 싶어 하죠.
그분의 권세를 이용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하는 방법이 하나님을 소유하려 하는 것이죠.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빼앗든, 구슬리든, 갖가지 방법으로 그분의 마음을 사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싸구려 신앙을 완전히 부수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다고요.
하나님은 소유할 수도, 지배할 수도 없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만든 신이 아니기 때문이죠.
오히려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압니다.
'진정한 신앙이란,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에 서려는 분투다'라고요.
'내가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소유하심을 믿는 것'을요.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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