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4. 07:19ㆍ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삼상 6:19~21, 그때에 벳세메스 사람들이 주님의 궤 속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 백성 가운데서 오만 칠십 명이나 쳐서 죽이셨다. 주님께서 그 백성을 그렇게 크게 치셨기 때문에, 그들은 슬피 울었다. 벳세메스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렇게 거룩하신 주 하나님을 누가 감히 모실 수 있겠는가? 이 궤를 어디로 보내어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할까?" 그들은 기럇여아림 주민들에게 전령들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이 주님의 궤를 돌려보냈으니, 내려와서 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상향되었습니다.
수도권에는 더욱 강화된 조치들이 시행되죠.
아마도 많은 불편함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영업자들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우리의 생활에는 제약이 따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불편함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이 다 나를 위한 조치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를 위해 불편함이 주어진 것이죠.
이율배반적인 말이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역사가 그렇습니다.
나를 위해 나를 제약하고 제한하는 일들이 벌어지니까요.
주어지는 불편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오늘이길 빕니다.
제한되고 막힌 길 앞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는 오늘이길 빕니다.
'폭탄 돌리기'라는 말을 아십니까?
컴퓨터 용어로도, 경제용어로도 쓰이는 말인데,
거두절미하고 공포의 수건 돌리기쯤 되는 그런 말입니다.
교육계에서도 '폭탄 돌리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보다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일시적인 방법을 선택함으로 나온 은어이죠.
간혹 상대 학교에서 전학 자체를
거부하는 일들도 생겨난다고 합니다.
학교라는 곳이 무엇일까요?
공부는 왜 할까요?
모르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모르기 때문에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는 것입니다.
알아서 잘하는 아이들이라면
학교가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모르는 아이들,
가르침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기에,
학교도, 교사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학교가,
모르는 것을 죄악시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을 죄인시 한다면
그것은 학생 이전에
학교나 교사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일일지도 몰라요.
또한 학생들도,
교사의 가르침이 벌이나 억압으로 생각한다면,
학생 됨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되는 것이죠.
언약궤를 받은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가지고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언약궤를 들여다본 사람이 죽어나가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그들은 이렇게 말하죠.
"어디 무서워서 언약궤와 함께 할 수나 있겠나?"
혹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주문이 많아서야,
이렇게 어려워서야 어디 하나님 믿겠나?"
사실문제는 하나님이 계셔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몰라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벳세메스는 여호수아에 의해
제사장들이 거주하도록 지정된 곳입니다.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다루는 법을 일찍부터 배웁니다.
그런데 그들이 언약궤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자신의 책무,
자신의 도리를 잊어버린 것이죠.
문제가 여기서 발생합니다.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피조물은 피조물의 자리로,
사명자는 사명의 자리로,
자신의 자리에 충실함이 창조의 질서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의 질서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심과 야망 때문에,
자신의 자리보다 더 큰 것을 원하고 바라기에
우리게 하나님은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함께하심이 은혜입니다.
가르치심이 은혜입니다.
견책하시고, 다스리심이 은혜입니다.
떠나보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나의 무지와 욕망입니다
"악한 자는 그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님께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주실 것이다." (사 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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