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27. 06:39ㆍ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삼상7:10~13 사무엘이 번제를 드리고 있을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다가왔다. 그러나 그 때에 주님께서 큰 천둥소리를 일으켜 블레셋 사람을 당황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패하였다. 이스라엘 사람이 미스바에서 나와서, 블레셋 사람을 벳갈 아래까지 뒤쫓으면서 무찔렀다. 사무엘이 돌을 하나 가져다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놓고 "우리가 여기에 이르기까지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 주셨다!" 하고 말하면서, 그 돌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지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사무엘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주님의 손이 블레셋 사람을 막아 주셨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 아침에 왠지 커피 한 잔과 차분한 음악이 그립네요.
아직은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이럴 때 시 한 편 떠올려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 박노해의 [길이 끝나면]입니다.
길이 끝나면 박노해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 봄이 걸어나온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도움의 돌, 에벤에셀을 움켜쥔다고해서
우리에게 승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를 외친다해서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에벤에셀 앞에서,
우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에 대해 불순종과 교만했던 나의 모습을 보며
정직한 절망을 하지 않는 한
그 돌은 하나의 기념비일 뿐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먼저 걸으신 주님의 삶 대신,
욕망과 탐욕으로 점철된 삶에 대해
정직한 회개가 없는 한
십자가는 단지 종교적 우상일 뿐입니다.
찰스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 나오는 구두쇠 스크루지의 별명이
에벤에셀이죠.
거창한 이름으로 불렸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인생에겐
그저 의미 없는 이름입니다만,
정직한 절망으로 시작한 새 삶은,
그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희망이 되죠.
우리가 붙드는 모든 것은,
자신이 부서지는 정직한 절망,
자신을 깨는 정직한 회개가 없다면
그 어떤 것도 다 우상입니다.
정직한 절망, 희망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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