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5. 07:35ㆍ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삼상2:31~36,
내가 네 자손과 네 족속의 자손의 대를 끊어서, 너의 집안에 오래 살아 나이를 많이 먹는 노인이 없게 할 날이 올 것이다. 너는 고통을 받으면서,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에게 베푸는 복을 시샘하며 바라볼 것이다. 네 가문에서는 어느 누구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네 자손 가운데서 하나만은 끊어 버리지 않고 살려 둘 터인데, 그가 제사장이 되어 나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맹인이 되고, 희망을 다 잃고, 그의 자손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변사를 당할 것이다.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한 날에 죽을 것이며, 이것은 내가 말한 모든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 나는 나의 마음과 나의 생각을 따라서 행동하는 충실한 제사장을 세우겠다. 내가 그에게 자손을 주고, 그들이 언제나 내가 기름 부어 세운 왕 앞에서 제사장 일을 보게 하겠다. 그때에 너의 집에서 살아남는 자들은, 돈 몇 푼과 빵 한 덩이를 얻어먹으려고, 그에게 엎드려서 '제사장 자리나 하나 맡겨 주셔서, 밥이나 굶지 않고 살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할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새벽 공기가 차네요.
날씨를 검색하니 현재 기온은 0도라고 알려줍니다.
따뜻한 외투를 준비하셔야 할 것 같네요.
기온이 우리를 움츠려 들게 해도,
비록 몸은 바짝 웅크린다 할지라도,
오늘을 사는 우리의 용기만큼은 결박시키지 못할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이 아침을 시작하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좋은 아침에 오늘 같은 본문은 조금 힘이 듭니다.
많은 글들이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협박'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글이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협박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닙니다.
'네가 이렇게 살았으니 이렇게 될 것이다'
어찌 보면 인과응보이고, 어찌 보면 권선징악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용서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은혜로 우리의 죄악을 덮으시는 하나님으로 보면,
이해하기 힘든 본문인 것은 사실입니다.
결국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
결국 우리가 잘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죠.
그런데 조금 다른 의미로 이 본문을 읽어보면 어떨까요?
이런 질문을 먼저 해 보죠.
왜 엘리는 아들들을 그렇게 키웠을까요?
왜 엘리는 불의한 제사장의 표본이 되었을까요?
의미 없는 질문인가요?
잘못된 성품, 잘못된 선택, 잘못된 판단은,
누구나에게 닥치는 문제죠.
그 앞에서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 능력이고,
그리스도인에게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만은 분명하죠.
누구보다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을 사람은,
바로 엘리였을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누구도 잘못 살고 싶지는 않아요.
누구도 실패하고 싶은 사람은 없죠.
어찌 악행을 일삼고, 불의하게 사는 아들을 바라는 아비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잘못된 교육을 하고 싶은 부모가 어딨을까요?
그런 의미로 보면 엘리는 정말 괴로웠을 것 같아요.
그런 괴로움의 엘리에게 퍼부시는 하나님의 '협박'은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실까? 하는 의문이 남죠.
하나님의 '협박'은 무엇을 노리시는 것일까?
설마 본보기를 보여주시는 것일까요?
이것을 보고 너희는 잘해라? 뭐 이런 의미일까요?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미루는 습관이 있습니다.
공부도 미루고, 할 일도 미루죠.
그렇게 미루다가 몰아서 하거나, 혹은 못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해요.
이것을 사람들은, '게으르다'라는 말로 힐난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게을러질까요?
천성일까요?
본래 우리는 게으른 존재일까요?
어떤 심리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일을 미루는 사람이 또 다른 일에는
신속하게 처리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 연구를 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어떤 일은 극심하게 미루면서,
또 다른 일은 너무 빨리 해 버리는 이중성이 있더라는 거죠.
그리고 밝혀낸 사실이 있어요.
게으름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그것은, 두려움이라고 해요.
일을 미루는 이유는,
그 일을 더 잘하고 싶은데 잘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라고요.
그래서 미룬다는 겁니다.
어쩌면 완벽하게 해 내려고 하는 거죠.
우리 안에 두려움이 나타나면
우리의 뇌는 자동으로 그 일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미루게 되고, 그래서 딴짓을 하게 된다는 거죠.
다시 엘리의 이야기입니다.
엘리가 아들들에 대해 방관적 교육을 한 이유는,
잘못된 성품과 행실, 잘못된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부모의 평상시 모습을 자녀들이 보고 배우니까요.
그런데 부모는 자식에 대한 교육의 특권이 있죠.
자신이 못해도 자식에 대해 옳은 것은 가르칠 수 있고,
자신에게 없어도 자식에게는 알려 줄 수 있는 것이 교육이죠.
그런데 그것을 못해요.
왜 못할까요?
두려워서입니다.
잘 가르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부족한 자신을 보는 낮은 자존감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에,
정작 하고 싶은 교육을 미루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전혀 다른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말입니다.
부족해도 괜찮다고,
네가 할 수 없어도 괜찮다고,
그래도 외치라고,
그래도 선포하라고 말이죠.
우리는 스스로 부끄러운 삶 때문에 주님을 선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나 같은 것이 무슨 복음이냐? 하는 이들도 있죠.
그것이 엄청 양심 있어 보일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다 두려움 때문입니다.
못 할 것 같은 두려움,
안 될 것 같은 두려움,
그 두려움을 벗으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못나도 괜찮다고, 못해도 괜찮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두려워하지 말고 하라고 말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해도 모자랍니다.
왼벽 할 수 없어요.
모든 것을 다 할 수도 없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벽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100점 맞기를 원하시지도 않아요.
단 한 걸음,
단 렙돈 두 닢,
단 밀가루 한 줌,
단 물고기 두 마디, 보리떡 다섯 개.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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