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묵상일기28 -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2020. 11. 13. 06:49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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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3:19~21  사무엘이 자랄 때에,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사무엘이 한 말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셨다. 그리하여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온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주님께서 세우신 예언자임을 알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실로에서 계속하여 자신을 나타내셨다. 거기에서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 아침에 주님의 따뜻한 위로가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고된 삶으로 피곤하고 지친 몸에,

잔잔한 은혜와 새롭게 샘솟는 힘을 주시기 원하고,

무겁고 힘겨운 삶의 무게로 간신히 눈을 떴을

우리들의 마음에 평안과 감사를 주시길 간절히 빕니다.

 

사무엘상 3장의 마지막은 사무엘의 삶을 종합하여 알려줍니다.

짧은 글이지만 사무엘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은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죠.

읽으면 읽을수록 부럽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자랄 때에 주님께서 그와 함께하셨다는 말씀은 질투가 날 정도고요.

계속해서 그에게 자신을 드러내셨다는 말은 너무도 닮고 싶은 모습이에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주님이 세우신 예언자로 여겼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차별을 느끼시는 분 계신가요?

사무엘이기에 그리 사랑하신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어머니의 신앙이 그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라고 느끼시나요?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은 턱도 없다고 결론지어지나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특정한 사람만을 사랑하실까요?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받는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죠.

주로 성경에서 등장하는 이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나도 그런 사랑, 그런 은혜와 축복을 받고 싶어 하죠.

그런데 하나님은 특별한 사람만을 사랑하시는 듯하죠.

이미 정해져 있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차별하시죠.

 

저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람들을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차별이라면 차별이라고 생각도 해요.

그런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특별함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한다는 것을 잊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러분은 어떤 구절이 가장 눈에 들어오시나요?

어떤 구절이 가장 중요할까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주님께서 함께하셨다거나 그에게 자신을 드러내셨다는 말이 가장 눈에 띄시나요?

사실 이 구절들은 그저 결과론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사무엘의 삶의 결과로 주어진 것들이죠.

그렇다면 사무엘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저는 그 모습을 19절 하반절에서 봅니다.

 

19   사무엘이 한 말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하셨다.

 

이 말이 어떻게 들리시나요?

너무 감사하고 좋은 말처럼 들리시나요?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그런데 저는 왜 이 말이 그리 무섭게 다가올까요?

만약 내가 한 말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고 다 이루어진다면 어떨까요?

여러분이 오늘 아침에도 한 말, 한 생각이 다 이루어진다면요?

일어나셔서 무슨 생각하셨습니까?

자녀들에게 어떤 말을 했고, 스스로에게는 어떤 말을 하셨나요?

아침의 첫 말이 '행복하다'셨어요? 아니면 '피곤하다'셨어요?

 

우리의 모든 말이 하나도 어긋남 없이 다 이루어진다면,

여러분은 어떠시겠어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괜찮으시겠어요?

 

사무엘은 우리와 달랐을까요?

그런데 사무엘에게 이 말이 축복이 된다면,

그것이 뜻하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사무엘은 말과 생각에서 늘 긍정적이었다는 것이죠.

늘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했다는 이야기일 거예요.

늘 은혜와 사랑, 감사와 축복이었을 거라는 거죠.

어찌 보면 그런 그의 말로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찌 보면 그의 그런 긍정적이고 감사의 생각에 하나님이 거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사무엘의 비밀이에요.

하나님이 특별한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무엘의 특별함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축복을 부른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양 가운데 이런 가사가 있어요.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고 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 발이 향하길 원해요.

 

왜 그래야 할까요?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고,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은,

나의 기도가 그분의 마음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은,

나의 소망이 그분의 소망과 같기 때문이고,

나의 뜻대로 된다는 것은,

나의 뜻이 그분의 뜻과 일치하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일치입니다.

누군가와 일하거나 함께 살 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생각의 일치와 방향성의 일치이듯이,

우리의 신앙은 그분과의 일치에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도 그 일치와 협력의 하루를 사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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